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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7 작은 카페 La Vigne 안에서


항상 지나쳐 다니기만 했던 카페에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과외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달달하고 씹을 필요도 없이 부드러운 슈거홀릭 슈크림을 사먹으려 들어갔다가
슈크림 칸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180도 돌아나온 후, 비를 피해 어디를 들어갈까 고민하다 떠오른 곳이었다.
지난 봄 밤에 산책하다 발견했던 카페.
이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싸구려 삼겹살을 팔던 가게 골목에 자그마하게 자리를 잡은 카페 라빈느.
밖에서 안을 몇번이나 쳐다보면서 "저기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그 공간.

들어가서 처음에는 무슨 달콤한 토스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가, "초코 속에 초코 컵케잌"이라는 메뉴를 보고 급수정.
다행스럽게도 토스트를 만들기 직전인 알바생? 혹은 사장님?은 몇백원 손해를 보시면서 나의 섣부른 주문을 변경해주셨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테이블 한켠에 있는 연필통과 노트 세권이 눈에 띠었다.
깽과 함께 각자 한페이지를 맘껏 끄적인 후, 우리는 세권의 노트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수준급의 그림부터 유치원생이 그릴법한 낙서까지, "이거 본 사람 합격한다", "이거 본 사람 애인 생긴다"라는 주술적인 성격의 문구에서 댓글이 달린 낙서페이지...그곳에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진지한 고민도 있었고, 장난스럽게 툭툭 던질법한 가벼운 농담도 있었다.
노트의 종이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떠오르는 사람들의 생각을 모조리 다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로 사는 세계가 너무나 달라져 공통된 주제를 찾기 힘들어져가는 깽과 나는 그 노트를 읽으며 함께 웃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왠지 이건 관음증이야라는 생각이 든 것은 나뿐이었을까.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진지한 고민인데 나는 그냥 이걸 심심풀이로 읽고 있는다는 현실이 참...뭐랄까..우스웠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나의 흔적을 열심히 남기기 시작했다.
무슨 대단한 글귀를 적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냥 10년 넘게 쌓여온 낙서, 아니지 '단지 끄적임'의 재능을 발휘한 것일 뿐이다.
떠오르는 단어들을 한국어, 영어, 독일어, 그리고 가능한한 프랑스어로 써보기도 했고,
머리 속에 맴돌던 머라이어 캐리의 "I'll never forget you"의 가사를 적어놓고 "음- 이 노래, 다시 보니 완전 스토커노래잖아?"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으며,
"왜 괜찮은 남자들은 다 임자가 있을까?"에 대한 장난스러운 글을 영어로 적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나는 왜 그곳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썼을까.
그것도,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독일어로?
내가 그걸 입밖에 내지 못하는 건 사실 그게 "고민"이라는 이름을 붙히기에도 민망한 사념에 불과하기 때문이었지만,
그 너덜너덜한 노트에 그 내용을 배설을 하고 나니 왠지 마음이 편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오늘 난 신림동 구석탱이에 자리잡은 이쁜 카페에 내 흔적을 남기고 왔다.
다시 찾아보지 않을 '낙서'에 불과하지만, 난 그 흔적때문에라도 그곳을 자주 찾을 것 같다....

-미니..^-^☆

P.S.: 라빈느의 "초코 속에 초코 컵케익"은 정말...최고다. 아니, 최고라는 말이 진부할 정도로 manifique하다.
카카오가 왜 최음제로 쓰일 수 있는지를 체험할 수 있을 정도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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