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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20 오늘의 테마 - 논문, 공부, 나.
- 오늘의 테마 - 논문, 공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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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20 14:48
- 논문, 오늘의 테마, 잡설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쓰기를 시작했다. 참고문헌들을 읽으면서 갈팡질팡하다가 머리 속으로 한참을 구상하고 나름 윤곽을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2주간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에서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또 지금까지 어찌나 나이브하게 주제에 접근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일주일동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한참을 방황했다. 선생님께서는 대략적인 가이드라인만으로는 내가 절대로 논문을 못 쓸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셨는지 이번주에는 과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내주셨다. 덕분에 난 하루에 Task를 하나씩 해결해야하는 빡센 스케쥴을 소화해내려 하루종일 좌불안석이다. 어제는 그래도 나름 무언가를 해낸 것 같은데 가장 쉬운 것부터 처리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오늘의 과제를 시작하기 전 이렇게 노닥거리는 내 모습이 이상하지도 않다.
걱정이 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려는 말이 뭘까? 내 주장이 타당한가? 내가 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만큼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가?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면 지금 정리하고 있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토해낼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졌는가? 아니, 그보다 내가 그동안 그 능력을 충분히 길렀는가? 너무 부족하진 않은가? 발표장에 들어서서 돌처럼 굳어버리진 않을까? 내 발표를 들은 사람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진 않을까? 건설적인 비판마저 개인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삐뚤어진 마음상태는 어떻게해야 치료가 될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덕분에 눈을 깜빡거리는 틱현상이 컴백해주셨고, 친구들의 연락에 일일이 답해줄 정신적 여력도 고갈되었다. 그러나 만나자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과의 약속을 수차례 미룬 결과, 어제와 내일 다시 한번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게 생겼다. [물론, 예전에 과외를 뛰면서 수업을 들었던 때, 과외시간에 늦을까봐 강변북로를 120km 밟던 그때만큼 '살인적'이진 않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충분히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압박적이다.]
그 와중에 지인이 정신적으로 쇠약한 상태임을 뒤늦게 깨닫는다던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눈치 못채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느껴지는 자괴감은 스트레스를 배가시킬따름이다. 죽겠다. 그래서인지, 술만 술술 들어가고 주량은 점차 늘어가는 것 같다. 체력은 뒷받쳐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따위, 개나 주라지. 지금은 그런 것따위를 운운할 정도의 정신줄도 잡을 수 없다.
게다가 요즘 계속 자기 전에 약을 먹는 걸 깜빡한다. 그래서일까. 점점 더 예민해진다. 촉을 세운다. 그러다가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다. 대화에 귀를 기울이긴 하지만 능동적으로 참여를 할만한 기운이 없다. 이럴 때 새삼 내가 내성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스트레스 받을 때 밖에 나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보다 방에 콕 박혀 컴퓨터 게임을 주구장창하는 게 훨씬 더 좋다. 짜증이 날 때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짜증이 날 때는 나에게서 발산되는 짜증에너지를 마구마구 퍼뜨릴 상대가 필요하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밖으로 밀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다 때려치우지 왜 여지껏 여기 앉아있느냐고 묻는다면...휴우. 그 질문은 지난 일주일동안 나 자신에게 몇백번이고 물었드랬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어디 취직을 하거나 다른 길을 찾으면 안될 것도 없는데 나는 스스로를 이런 지경에 몰고가는가....
결론은, 그래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세상의 이치. 세상이 돌아가게 만드는 톱니바퀴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좋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사람들의 공통점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내 주변 환경에 많이 휘둘렸다. 좋게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이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내 옆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고 살아가는지를 엿보며 그것을 따라하면서 살아갔다. 어떤 사람은 강렬한 빨강색을, 어떤 사람은 푸르른 녹색을 띠고 내면에서 빛을 발산하며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데 나는 스스로를 무색무취로 느꼈다. 취향이나 선호도 불분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A가 좋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상황에 처하면 A보다는 B를 선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불만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리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 말이 맞고, 반대편에 있는 저 사람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 말이 맞으니까. 두 개의 대립적인 주장을 듣고 그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친구들을 보면 언제나 감탄을 하면서 부러웠다. 그래, 저 친구들은 확고한 중심이 있으니까 저게 가능할꺼야-라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나의 무능력을 탓했다. 난 멍청하니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못하는 바보니까 이리저리 휘둘리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질 못하는거야-라고.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게 좋았다. 그저 문제 하나를 더 맞춰 점수를 1점이나마 올리려는 의도에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정말 궁금했다. 모든 것이. 어렸을 적 미친듯이 파고들었던 추리소설들에 등장하는 탐정, 특히 나의 우상이었던 셜록 홈즈처럼 박학다식하면 무언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대학와서도 내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목표했던만큼 많이 하진 못했지만, 나에게 공부란 어차피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이론들을 꿰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인간들, 정말이지 혜안을 지닌, 박학다식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어떤 책에서 읽지 못할 지식들을 알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 '공부'의 진정한 의미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이해하는 것,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 그런 것들. 아직도 학문의 차원에서 난 많이 모자르다. 나도 안다. 그러나 하루하루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사회적 사안에 대하여 무엇이 옳은지, 내가 그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고 싶은지 파악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스스로에 대하여 대견스럽다.
지금은, 그러니까 논문을 쓰는 지금은 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종합해서 사람들에게 내놓을 차례이다. 내가 느끼는 감상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해서 사람들을 설득시킬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라던가, 딱히 다른 걸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손에서 놓는다면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뭐가 뭔지 감도 못잡고 어리버리하게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고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이 시간은 (누가 봤을 때 엄살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고통은 주관적인 거니까) 내가 성장하는데 치루어야할 대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것만 견디면 난 조금 더 커져있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인간에 가까워지겠지.
-미니..^-^☆
걱정이 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려는 말이 뭘까? 내 주장이 타당한가? 내가 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만큼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가?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면 지금 정리하고 있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토해낼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졌는가? 아니, 그보다 내가 그동안 그 능력을 충분히 길렀는가? 너무 부족하진 않은가? 발표장에 들어서서 돌처럼 굳어버리진 않을까? 내 발표를 들은 사람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진 않을까? 건설적인 비판마저 개인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삐뚤어진 마음상태는 어떻게해야 치료가 될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덕분에 눈을 깜빡거리는 틱현상이 컴백해주셨고, 친구들의 연락에 일일이 답해줄 정신적 여력도 고갈되었다. 그러나 만나자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과의 약속을 수차례 미룬 결과, 어제와 내일 다시 한번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게 생겼다. [물론, 예전에 과외를 뛰면서 수업을 들었던 때, 과외시간에 늦을까봐 강변북로를 120km 밟던 그때만큼 '살인적'이진 않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충분히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압박적이다.]
그 와중에 지인이 정신적으로 쇠약한 상태임을 뒤늦게 깨닫는다던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눈치 못채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느껴지는 자괴감은 스트레스를 배가시킬따름이다. 죽겠다. 그래서인지, 술만 술술 들어가고 주량은 점차 늘어가는 것 같다. 체력은 뒷받쳐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따위, 개나 주라지. 지금은 그런 것따위를 운운할 정도의 정신줄도 잡을 수 없다.
게다가 요즘 계속 자기 전에 약을 먹는 걸 깜빡한다. 그래서일까. 점점 더 예민해진다. 촉을 세운다. 그러다가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다. 대화에 귀를 기울이긴 하지만 능동적으로 참여를 할만한 기운이 없다. 이럴 때 새삼 내가 내성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스트레스 받을 때 밖에 나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보다 방에 콕 박혀 컴퓨터 게임을 주구장창하는 게 훨씬 더 좋다. 짜증이 날 때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짜증이 날 때는 나에게서 발산되는 짜증에너지를 마구마구 퍼뜨릴 상대가 필요하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밖으로 밀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다 때려치우지 왜 여지껏 여기 앉아있느냐고 묻는다면...휴우. 그 질문은 지난 일주일동안 나 자신에게 몇백번이고 물었드랬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어디 취직을 하거나 다른 길을 찾으면 안될 것도 없는데 나는 스스로를 이런 지경에 몰고가는가....
결론은, 그래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세상의 이치. 세상이 돌아가게 만드는 톱니바퀴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좋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사람들의 공통점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내 주변 환경에 많이 휘둘렸다. 좋게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이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내 옆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고 살아가는지를 엿보며 그것을 따라하면서 살아갔다. 어떤 사람은 강렬한 빨강색을, 어떤 사람은 푸르른 녹색을 띠고 내면에서 빛을 발산하며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데 나는 스스로를 무색무취로 느꼈다. 취향이나 선호도 불분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A가 좋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상황에 처하면 A보다는 B를 선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불만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리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 말이 맞고, 반대편에 있는 저 사람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 말이 맞으니까. 두 개의 대립적인 주장을 듣고 그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친구들을 보면 언제나 감탄을 하면서 부러웠다. 그래, 저 친구들은 확고한 중심이 있으니까 저게 가능할꺼야-라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나의 무능력을 탓했다. 난 멍청하니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못하는 바보니까 이리저리 휘둘리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질 못하는거야-라고.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게 좋았다. 그저 문제 하나를 더 맞춰 점수를 1점이나마 올리려는 의도에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정말 궁금했다. 모든 것이. 어렸을 적 미친듯이 파고들었던 추리소설들에 등장하는 탐정, 특히 나의 우상이었던 셜록 홈즈처럼 박학다식하면 무언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대학와서도 내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목표했던만큼 많이 하진 못했지만, 나에게 공부란 어차피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이론들을 꿰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인간들, 정말이지 혜안을 지닌, 박학다식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어떤 책에서 읽지 못할 지식들을 알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 '공부'의 진정한 의미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이해하는 것,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 그런 것들. 아직도 학문의 차원에서 난 많이 모자르다. 나도 안다. 그러나 하루하루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사회적 사안에 대하여 무엇이 옳은지, 내가 그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고 싶은지 파악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스스로에 대하여 대견스럽다.
지금은, 그러니까 논문을 쓰는 지금은 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종합해서 사람들에게 내놓을 차례이다. 내가 느끼는 감상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해서 사람들을 설득시킬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라던가, 딱히 다른 걸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손에서 놓는다면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뭐가 뭔지 감도 못잡고 어리버리하게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고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이 시간은 (누가 봤을 때 엄살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고통은 주관적인 거니까) 내가 성장하는데 치루어야할 대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것만 견디면 난 조금 더 커져있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인간에 가까워지겠지.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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