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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02 오늘의 테마 - 잠
- 2011/12/26 오늘의 테마 - 2011년 결산
- 2011/08/20 오늘의 테마 - 논문, 공부, 나.
- 2010/05/30 오늘의 테마 - 대학생 부재자 투표 누락/무효화..?!?! (2)
- 2010/05/20 오늘의 테마 - 글쓰기에 대한 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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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19 오늘의 테마 - 옛날 노래, 요즘 노래
- 오늘의 테마 - 잠
- iMPrEsSioN
- 2012/02/02 17:08
- 오늘의 테마, 잠
미니는 잠을 참 많이 잔다.
어렸을 때 독일에서 자라서 그런지 하루 수면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정신을 못차린다.
(독일에서 어린이는 9시간, 평균 성인은 8시간을 자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상식처럼 6시간씩 자는 건 거기서는 상상도 못할 일..)
그래서인지 하루에 8시간을 자야 "아~ 잠 좀 잤구나, 피로 좀 풀렸구나." 싶다.
아침잠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는 매일매일 아침이 고통스러웠지만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는 느즈막히 오전에 일어나도 되었으니 상쾌하기 그지없는 기상을 경험했다.
옛날에는 머리를 대기만 해도 잠에 들었다. 아, 그 때가 참 행복했는데.
그런데 재수할 때 발생한 사건 때문에 이제는 자려고 불끄고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수능 전날이었다.
가족들한테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또 어르고 협박을 하여 저녁 8시 이후로는 모두 조용히 하도록 시켰다.
난 자야했으니까. 살면서 가장 중요하달 수 있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했으니까.
그런데 고3때와는 달리 그 때는 막상 다음날 수능을 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나도 긴장이 되어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가 따듯하게 우유를 데워주기도 하고, 자기 위해 별짓을 다해봤지만, 10시, 11시가 지나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아빠가 들어왔다.
만취상태로.
술에 취한 아빠는 집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정을 부렸다.
난 방에 틀혀박혀서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엄마가 아빠한테 잔소리하는 것까지 다 들렸다.
애가 다음날 수능이라고. 목소리 좀 낮추라고. 애 자야한다고.
그랬더니 우리 아빠는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이며 "그래서 내가 조용히 해야한다고? 얘 어딨어? 시험보는 건 지가 알아서 보는거고, 내가 왜 조용해야 해?"라고 말했다.
방에서 그 소리를 다 들으며 난 그나마 졸리던 것까지 다 깨면서 분노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곧 방으로 들어갔고, 난 그 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우고 시험을 치르러 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누워도 잠에 바로 들지 못한다.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조금이라도 빛이 들어오면 절대로...불가능하다...
짧으면 한시간을 그냥 누워있어야 잘 수 있고, 심할 경우에는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눈을 감기도 한다.
그건 참 괴로운 일이다. 왜나하면 잠이 안 온다고해서 책을 본다거나 다른 걸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무지 피곤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누워있을 수 밖에 없는데 잠에 들지 못하는 건 정말 고역이다.
설상가상으로 친구집에서 같이 자는데, 친구가 먼저 잠들 경우, 그리고 그 친구가 코를 골거나 이를 갈 경우에는 정말이지...어휴.
난 잠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는 무조건 많이 잘 수 있도록 노력한다.
예컨대 시험 전날, 혹은 소개팅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머리가 무거워지고 멍한 것이,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있으면 푹 자둬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잠에 잘 들지는 못하지만 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한 번 잠들면 꾸준히 잔다.
깊게는 못자지만, 잘 수 있을 때 미친듯이 자는 것이다.
심지어는 최고기록 34시간을 채운 적도 있다.
혹자는 허리가 아파서 오래 못잔다고 하던데,
난 허리가 아파도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다. 그러다보면 잠이 깼다 들었다를 반복한다.
그 시간만큼은 너무나도 행복하다.
그러고 나서 일어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아침형 인간'이 유행했을 때 한 번은 따라하려 했었다.
우리 어무이께서도 워낙에 아침형 인간이시라 늦게까지 안 일어나는 나를 언제나 질책하셨고,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면 그렇게 머리가 상쾌하다는 말을 듣고 혹했었다.
그러나 금새 포기했다.
안되는 걸 어쩐단 말이냐.
그렇다고 야행성도 아닌 것 같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니 저녁 늦게까지 공부할 일이 생기긴 하는데,
그렇게 '잘' 된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가장 집중이 잘 될 때는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인 것 같다.
그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오전 11시도 비몽사몽인 상태로 버티지만.
암튼, 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잠을 사랑한다.
문제라면, 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
- 미니^-^☆
어렸을 때 독일에서 자라서 그런지 하루 수면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정신을 못차린다.
(독일에서 어린이는 9시간, 평균 성인은 8시간을 자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상식처럼 6시간씩 자는 건 거기서는 상상도 못할 일..)
그래서인지 하루에 8시간을 자야 "아~ 잠 좀 잤구나, 피로 좀 풀렸구나." 싶다.
아침잠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는 매일매일 아침이 고통스러웠지만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는 느즈막히 오전에 일어나도 되었으니 상쾌하기 그지없는 기상을 경험했다.
옛날에는 머리를 대기만 해도 잠에 들었다. 아, 그 때가 참 행복했는데.
그런데 재수할 때 발생한 사건 때문에 이제는 자려고 불끄고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수능 전날이었다.
가족들한테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또 어르고 협박을 하여 저녁 8시 이후로는 모두 조용히 하도록 시켰다.
난 자야했으니까. 살면서 가장 중요하달 수 있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했으니까.
그런데 고3때와는 달리 그 때는 막상 다음날 수능을 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나도 긴장이 되어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가 따듯하게 우유를 데워주기도 하고, 자기 위해 별짓을 다해봤지만, 10시, 11시가 지나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아빠가 들어왔다.
만취상태로.
술에 취한 아빠는 집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정을 부렸다.
난 방에 틀혀박혀서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엄마가 아빠한테 잔소리하는 것까지 다 들렸다.
애가 다음날 수능이라고. 목소리 좀 낮추라고. 애 자야한다고.
그랬더니 우리 아빠는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이며 "그래서 내가 조용히 해야한다고? 얘 어딨어? 시험보는 건 지가 알아서 보는거고, 내가 왜 조용해야 해?"라고 말했다.
방에서 그 소리를 다 들으며 난 그나마 졸리던 것까지 다 깨면서 분노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곧 방으로 들어갔고, 난 그 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우고 시험을 치르러 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누워도 잠에 바로 들지 못한다.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조금이라도 빛이 들어오면 절대로...불가능하다...
짧으면 한시간을 그냥 누워있어야 잘 수 있고, 심할 경우에는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눈을 감기도 한다.
그건 참 괴로운 일이다. 왜나하면 잠이 안 온다고해서 책을 본다거나 다른 걸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무지 피곤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누워있을 수 밖에 없는데 잠에 들지 못하는 건 정말 고역이다.
설상가상으로 친구집에서 같이 자는데, 친구가 먼저 잠들 경우, 그리고 그 친구가 코를 골거나 이를 갈 경우에는 정말이지...어휴.
난 잠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는 무조건 많이 잘 수 있도록 노력한다.
예컨대 시험 전날, 혹은 소개팅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머리가 무거워지고 멍한 것이,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있으면 푹 자둬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잠에 잘 들지는 못하지만 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한 번 잠들면 꾸준히 잔다.
깊게는 못자지만, 잘 수 있을 때 미친듯이 자는 것이다.
심지어는 최고기록 34시간을 채운 적도 있다.
혹자는 허리가 아파서 오래 못잔다고 하던데,
난 허리가 아파도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다. 그러다보면 잠이 깼다 들었다를 반복한다.
그 시간만큼은 너무나도 행복하다.
그러고 나서 일어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아침형 인간'이 유행했을 때 한 번은 따라하려 했었다.
우리 어무이께서도 워낙에 아침형 인간이시라 늦게까지 안 일어나는 나를 언제나 질책하셨고,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면 그렇게 머리가 상쾌하다는 말을 듣고 혹했었다.
그러나 금새 포기했다.
안되는 걸 어쩐단 말이냐.
그렇다고 야행성도 아닌 것 같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니 저녁 늦게까지 공부할 일이 생기긴 하는데,
그렇게 '잘' 된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가장 집중이 잘 될 때는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인 것 같다.
그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오전 11시도 비몽사몽인 상태로 버티지만.
암튼, 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잠을 사랑한다.
문제라면, 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
- 미니^-^☆
- 오늘의 테마 - 2011년 결산
- eXprEsSioN
- 2011/12/26 22:25
- 2011년, 오늘의 테마
일년 전 이맘때 난 독일에 있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ㄱㅈ언니집에서 놀았다.
낮에 탕수육이며 깐풍기며 잔뜩 튀겨서 언니 집에 갔고, 거기서 보지 못했던 한국예능프로를 다운받아 봤었다.
즐겁게 수다도 떨었다. 술도 먹었고. (술을 잘 먹지 않는 언니는 나를 위해 일부러 술을 사놓으셨었던 걸로 기억한다. 흐흐)
그리고 난 언니 집에서 뻗어잤다. 으흐흐.
크리스마스날 아침 눈을 떠보니 언니는 침대에 앉아 괴테의 "시와 진실"을 읽고 있었다.
아직도 그 모습이 선명하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나도 책을 즐겨읽긴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괴테의 "시와 진실"이라니.
하루키도 아니고, 쥐스킨트도 아니고, 괴테라니.
아직까지도 내가 '공부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때면 언니의 그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할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난 언니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사람이니, 주제에 맞게 아침은 가요를 들으며 시작해도 되겠지.
이제 2011년도 며칠 안남았다,
내년이면 스물아홉. 서른까진 일년하고 6일 남았구나.
스물여덟의 끝자락을 붙들고 올 한해를 정리할까 싶어 끄적인다.
1월, 2월. 독일에서 한국에 왔다.
1월까진 독일에 있었고, 막판에 논문에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 전에 미리 사두었던 카프카-Handbuch를 포함해서 내 논문의 시초가 된 Christine Kanz의 "선고" 분석까지.
칸츠의 글을 읽으면서 침대에 누워 인상적이고 필요한 구절들은 밑줄쳐가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틈틈이 워드로 생각들을 정리해가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친구들을 만나 선물들을 주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ㅅㅈ언니와 린을 만났던 2월 21일.
홍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합정의 자그마한 바에 들어가 포도주를 세병 비웠었다.
셋 다 취해서 급기야 한시간 넘게 영어로 떠들기 시작했고,
만취한 린은 그 자리에 토했다. 끙.
이미 주량을 넘긴지 한참 지났던 ㅅㅈ은 마지막 남은 정신줄을 바짝 잡고 린을 데리고 화장실에 갔고,
난 주인언니한테 미안해서 토사물을 손수 다 닦아 치웠다.
각자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데, 우리 셋 다 다음날 스케쥴이 있었다. ㅡㅡ^
다음날 서로 문자를 보내며 힘들다죽겠다죽겠다 소리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난 그날 대학원 모임이 있었고, 그 전에 ㅇㅈ을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토하고 약국에 가서 숙취약을 사먹을 정도로 속이 안좋았다.
그때 알았다.
와인은, 정말 더.러.운. 술이구나-라고.
그리고는 그 이후로는 와인을 예전만큼 쉽게(?) 보지 않는다.
어쨌든 대학원 모임을 갔고, 처음으로 대규모 자리에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저녁은 시골집에서 먹었는데, 건너편에 앉은 신입생은 열심히 고기를 굽고,
낯을 가리는 나는 옆에 앉은 ㅈㅌ오빠와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수다를 다 떨고 나니 고기판은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고,
2차를 간다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난 사당으로 이사 간 깽을 방문했다.
집이 꽤 커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독일 가기 전까지 죄다 녹두에 뭉쳐살던 우리가 어느덧 각자 다른 동네로 이사갔다는 사실이,
그리고 다들 이제 엄연한 사회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뇌리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고딩친구인 ㅅㅎ마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개강 전 할일도 없었던 나는 태릉 쪽에 있는 병원에 찾아가 ㅅㅎ 딸 ㅇㅅ를 보고 왔다.
우리 겸둥이 ㅅㅎ가 아이엄마가 되었다니.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이렇게 우리들이 나이를 먹는구나, 이렇게 세월이 가고 우리는 살아가는구나.
3월이 되어 개강을 했고, 수업을 잘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콩닥콩닥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사람을 발견했다.
술만 먹으면 생각이 나고 시야에 들어오면 미소를 띠게 되는 그런 사람.
만우절에는 세발과 함께 ㅅㅎ를 찾아갔다.
아이는 인형같이 작고 예뻤다.
사진을 찍어대며 애가 한번 꼼지락거리면 호들갑을 떨며 예뻐했다.
셋이 모여 수다를 떠니, 옛생각이 나면서, 순간, 드라마에서 보던대로 친구들 중 한명이 결혼해서 애를 낳고, 나머지 친구들이 그 집에 놀러가 수다를 떠는 20대 후반의 미혼여성들의 모습이 이런거로구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왠지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공허했다.
그래서 지하철 안에서 ㅈㅅ언니에게 연락을 하여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
그 때 언니랑 속깊은 얘기까지 다 했던 것 같다.
술도 맘껏 마시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때 꽂혔던 곡이 바로 코린 베일리 레이의 "Just like a star"였다.
컬러링도, 벨소리도 죄다 이걸로 설정해놨었다.
그래서였을까, 28살 4월달에 처음으로 혼자서 (술에 취해) 노래방에 갔었다.
새벽에 들어가 한참 노래를 부르고 나오니 해가 떠있었다. 첫차를 타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4월달은 즐거웠었다.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깊어갔고, 좋아하는 마음이 시작되면 으레 그렇듯이 온세상이 분홍빛으로 물들었었다.
4월이라는 잔인한 달이 조금씩 새싹을 내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파릇파릇 무언가를 피우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난 5월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다웠다.
생일을 핑계삼아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신나게 놀았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야구장이라는 곳도 가보고,
그 사람과 단둘이 밥도 처음 먹어보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배경삼아 사진도 잔뜩 찍으면서
찬란한 봄날들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내 안에 숨어있던 징글한 놈이 계속 고개를 내밀려 바둥거리고 있었다.
어느 하루는 아무 이유없이 세시간동안을 울었고,
저녁에는 센치해져서 술을 찾기도 했고
과거의 악몽이 밤에 찾아와 날 잠에서 깨우기도 했다.
웃음 뒤에는 괴물이 발톱을 세우고 내가 혼자 있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혼자가 되면 사정없이 할퀴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6월달은 '나름' 격동의 시기였다.
처음으로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고 상세불명의 양극성 정동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쉽게 말하면 '조울증'. 그게 세상이 내 안의 괴물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생활을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약을 먹기 시작했고,
필라테스를 등록했으며 부산으로 여행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물론, 논문 준비는 꾸준히 하고 있었다.
페미니즘과 근대적 주체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단, 논문에 어떻게 엮어 나갈지는 전혀 생각치도 않은채.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돌아오지 않는 마음은 점차 지쳐가고 있었지만.
학기는 끝나가고 방학이 시작되었다.
기억나는 건...깽과 ㅅㅇ의 선물을 하기 위해 열중했던 퀼트.
둘은 생일이 일주일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다른 색상의 파우치를 만들기로 했었다.
학교에서 과사근무를 하면서 꾸준히 바느질을 했다.
열심히,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
다행이도 그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아직도 잘 들고 다닌다.
(평생 A/S를 약속했으니 고장나지 않길 바랄뿐이다.)
계획했던대로 부산도 갔다.
마리와 깽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물론 금요일밤에 출발을 했기에 놀 수 있는 날은 이틀밖에 없었지만.
7월 8일부터 10일까지.
원래는 김해 사는 깽양집에서 이틀 자기로 했었는데, 예기치 못한 극적인 상황때문에 마리네 외삼촌집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다행이도 그 분은 부산 중구에 사셨기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거기엔 마리 어머니, 마리 동생, 마리 일본이모, 마리 외삼촌, 마리 사촌동생까지 다 있었다.
아침부터 배터지게 아침밥을 얻어먹고 쿨하신 가족분들 덕에 마리 일본이모분과 함께 맞담배를 피며 하루를 시작했다.
일단 범어사로 출발했다.
집에서 나설때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가 오지 않아 "난 정말 운이 좋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범어사에 도착하니 웬 비가.....비가....'폭우'라는 단어가 우스울만큼 퍼부었다.
범어사는 아름다웠다.
난 천주교신자인데도 절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절만이 갖는 고요함 때문이다.
자연 속에 어우러진 건물들과 그 공간이 주는 평안함이 너무 좋다.
비가 와도 마리와 나는 신나게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다.
좋았다. 정말 좋았다. 옷이 다 젖어도 즐거웠다.
내려와서는 마리 가족분들과 깽과 합류하여 남포동 시장골목에서 먹을 것들을 섭렵했다.
참 맛있었는데...쩝.
비가 퍼붓는데 바다를 봐야한다고 우겼던 나는 결국 마리와 깽을 이끌고 광안리에 가서 바다에 발도 담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때문에 둘이 참 고생했다.
그 전까진 KTX 한번 타본적 없는 서울촌년 데리고 다니면서 내가 보고 싶은 건 죄다 같이 보고, 같이 가고...
(고맙다 친구들!)
파이널로는 돼지국밥!
아, 그 맛은 정말 잊을 수 없이 좋았다.
서울에서는 먹어볼 수 없다는 게 눈물 한방울 정도 나올 만큼 아쉽다. 그정도로 맛있었다.
그날 저녁 깽 집에 들어가는 길,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 아저씨는 나의 서울말을 듣고 나긋나긋하다고 칭찬하셨고,
그런 말을 처음 들은 나는 너무나 기뻐 날뛸뻔했다. (세상에, 내가 나긋나긋하다니!)
다음날에는 다시 남포동에 갔고, 마지막 쇼핑을 했다.
몰랐는데, 남포동 윗골목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물건들이 들어오는 가게들이 즐비해있다.
거기에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나무젓가락을 마구 샀다.
(그 전날에 마리 가족분들이 점심값을 다 내주셨기 때문에 예산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책방골목도 구경했고, 예상외의 득템("한국 독어독문학 연구 문헌 서지": 87년까지 나온 독어독문학계 논문들 서지정보가 다 나온 책. ㅎㄷㄷ)을 하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부산 여행도 그렇게, 즐겁게 지나갔다.
그러나 올 방학에 있었던 일들 중 가장 웃겼던 건, 졸업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 다시 학부 연극제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는 것.
그래봤자 '각색'이라는 자그마한 타이틀을 달았지만,
논문에 적잖은 타격을 준 것도 사실이다.
과방에서 이틀을 밤을 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것도 독어 원문이랑 번역본이랑 판본이 달라서 한번 끝냈던 각색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다 했어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에는 ㅇㅎ이와 타이핑 및 각색 방향을 잡느라 밤을 샜고, 그 다음에는 독일에서 온 크리스티나와 연출과 넷이서 다 같이 밤을 샜다. 그 날은 타이핑까지 다 끝내고 제본을 맡기기 위해 밤을 새고 나서도 난 오후까지 작업에 매달려 있었다. 아침에 ㅇㅎ이가 먼저 가고, 다음에는 연출이 연극 연습에 참여하기 위해 가고, 나중에는 크리스티나까지 가버렸었다. 나만 외로이 남아 몇 백번을 봤을 대본을 보고, 또 보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밥도 못먹고 오후 세시까지 작업을 해서 제본집에 맡기고 난 일산으로 튀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난 연극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공부진행상황은 약간 느려지기 시작했다. 지쳐가기도 했거니와, 아도르노 스터디를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건 손을 댈 시간도 없었다. 빨리 끝내겠다는 일념하에 진행된 스터디는 일주일 내내 붙잡고 있어야 소화할 수 있는 분량으로 책정되었고, 간간히 제주도에 내려가야하는 ㅈㅌ오빠의 스케쥴에 맞춰 아침부터 오후까지 마라톤스터디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처럼 이년을 공부하면 박사학위따위 우습게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문제는 언제나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법.
X양의 제보, 날짜도 기억난다. 7월 13일 수요일 저녁.
이미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잡은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있다는 말에 난 울었고, 집에 고이 모셔둔 꼬냑을 8잔 들이켰다.
잠이 오지 않았고, 다시 우울증에 빠지는 듯 했다.
깽, ㅅㅇ, 마리에게 전화를 걸어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내 인생 왜 이따위냐고.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냐고.
오죽했으면 마리는 몇시간이고 나랑 통화를 했으며 깽과 ㅅㅇ은 다다음날 날 만나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술을 먹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난,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날 사랑한다던 남자친구가 버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슬플 뿐이었고, 재수없는 내 팔자가 한심스러웠을 뿐이다.
그 사람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 친구들은 나를 이상하다 했다.
기분이 나빠도 된다고. 기분은 이유가 없어도 나쁠 수 있다고.
기분은 감정인데, 그게 왜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어야 나빠질 수 있냐고.
나 스스로를 너무 분석하지 말라고.
그러나 난 정말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내 옆에는 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있는데.
나의 전화 한통에 이렇게 모여주는 친구들이 든든하게 나를 지키고 있는데
기분 나쁠 틈이 어디있었겠는가.
그리고 7월 마지막 주에는 우면산이 무너질 정도의 폭우가 왔다.
그러나 난 비를 뚫고 학교를 가야했다.
왜? 스터디 발제도 있었고, 연극대본문제도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오래 걸렸던 연극각색 때문에 난 정말 우울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독일대학과 우리학교 교류프로그램 조교일까지 떠맡게 되어 분노게이지가 급상승하기도 했었다.
그 와중에 지도교수님께서는 이전에는 기피하시던 논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마음은 마구 찢겨진 상태에서 나는 최저치를 찍고 있었다.
그 상태는 8월까지 이어졌다.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그나마 날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독일에서 온 구원투수, 크리스티나 덕분이었다.
일주일에 거의 세번씩 그 아이와 술을 먹었고, 낮에 받은 스트레스를 밤에 풀 수 있었다.
깽도, ㅇㅈ도, ㅅㅇ도 없는 학교에서 나에겐 진정한 '친구'라는 존재가 필요했었는데,
크리스티나가 그 공백을 채워줬다.
낮에는 그녀 역시 연극 연습때문에 바빴고, 나 역시 공부한답시고 연구실에 앉아있었는데,
밤에 그녀와 낙성대로 내려가 양집에서 진토닉을 먹을 때면,
독문학과,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할 때면,
세상이 그나마 좀 살만한 곳이 되었다.
그리고 날 살 수 있게 만든 또 하나는 지도교수님과의 캠퍼스 투어.
그걸 '산책'이라 부르긴 했지만, 장장 2시간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하루가 다 가곤 했다.
그래도 선생님과 진심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논문의 가닥을 잡는데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너무 정신이 없고 마음도 피폐한 상태에서 내가 '논문을 쓰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하는데에도 선생님과의 산책은 (지금 돌이켜보면) 반드시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솔밭식당에서 국수를 먹으며 이른 저녁을 떼우고 저물어가는 태양을 배경삼아 걷다가 커피 한 잔씩 홀짝이며 연구실로 향할때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머리 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아는 걸 다 쏟아냈지만서도 기분은 상쾌했다.
또한 그 사람으로부터 마음 속으로 거리를 둘 수 있어서 좋았다.
10월 초에는 설악심포지움. 경주로 갔다.
아아아, 정말 행복했다.
오전, 오후로 독일어 발표를 듣느라 진이 빠지고는 했지만, 밤에 사람들과 맥주를 기울이며 보냈던 시간들이 참 소중했다.
가기 전날에는 너무나 가기 싫어서 깽을 불러 여기서 하소연을 했건만,
막상 가고나니 가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석사를 끝내고 무엇을 공부해야할지에 대한 가닥이 잡혔기에 신나게 놀고만 왔다는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경주는 아름다웠다. 내 마음도 너무 즐거웠다.
안압지의 야경과 불국사의 아름다움은 지쳤던 내 마음을 토닥거려줬다.
그래, 그 때만큼은 정말 행복했다.
심포지움 직후 집중세미나. 독일에서 오신 교수님들과 이루어졌던 독어세미나.
재밌는 건, 세미나 전날 독일 선생님들을 모시고 우리측에서 교수님 몇분이랑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는 나의 지도교수님도 계셨다. 1차 한정식을 먹고 2차 맥주를 먹고 다들 다음날 세미나를 위해 일찍 자리를 뜨는데,
나와 크리스티나(그녀는 연극 도우미와 독일측 조교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만 남게 되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술에 취하시면 맥주를 무한섭취하신다...
그래서 "우리 한잔만 더하자"라는 말이 몇백번 나오기 일쑤다.
이날 역시 그러셨는데, 심지어 맥주집이 마감할 때까지 술을 먹었다.
난 그래도 적당히 조절하며 마신다고 했는데도 취했다.
3차는 문 연 곳을 찾다보니 인근 정육식당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정말..
...갑자기 선생님께서 날 쳐다보시더니
"너도 흡연자잖아?! 왜 담배 안펴?"라고 귀엽게 도발하셨고,
그렇잖아도 알코올을 섭취하면 담배가 땡기는 흡연자로서 난 한대를 당당히 피웠다.
그러자, 몇년째 금연을 하시던 선생님께서도 담배를 피시기 시작하셨다.
아, 손의 연장선이 된듯한 담배를 피는 선생님은 정말 섹시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40대 아줌마로 봐야하는데, 정말이지, 담배를 피는 선생님은 정말 멋졌다.
다시 한 번, 이런 분은 스승으로 모신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이런 광란의 알코올밤을 보내고 다음날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세미나에 들어온 우리 셋(나, 크리스티나, 선생님)은 숙취에 시달리며 정신 없는 상태로 앉아만 있었다.
이 집중 세미나에 대한 또다른 기억은 바로 kik.
kik만 아니었으면 더 즐겁고 활발한 토론이 될 수 있었는데,
이 분때문에 기분 잡친 적도 적잖았다.
특히 독일 교수분께서 표정이 썩을때의 민망함이란...
나중에 크리스티나한테 듣고보니 그 분들께서 kik를 정말 싫어했다는....ㅡㅡ;;
세미나가 끝나면서 크리스티나와도 작별을 해야했다.
우리는 항상 술을 먹고나서 문을 연 곳이 없어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먹으며 몇시간을 앉아있었는데,
그녀가 떠나기 전날에도 우리는 만났다.
그 전에 그녀는 한국와서 알게된 친구들과 인천에서 만나고 나를 늦은 밤에 만났다.
그 때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아 술을 먹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편의점에 앉아서 다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가져가지 못하는 짐을 정리해서 나에게 안겨주었다.
헤어져야했는데, 우리는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몇년 사귄 연인을 유학보내는 사람들처럼 애뜻한 마음으로 우리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작별했다.
많이 허전했다. 삼개월동안 큰 위로가 되어준 친구였고, 같이 지냈던 짧은 시간에 비해 진심이 통했던 친구였기에.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간 10월 중순 이후로 나의 논문 러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잊혀지지도 않는 10월 28일, 논문 개요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써놓은 것이 없었던 나는 발표문 10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정신적으로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원래는 삼일전에 심사위원선생님들께 발표문을 미리 드렸어야 했는데,
난 이틀전에 겨우 보내드렸다.
그러고나서 지도교수님과 발표문을 검토했는데, 너무 지적된 사항들이 많아서 다시 다 수정하고 전날 밤에 다른 선생님들께 다시 보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ㅡoㅡ;;;;;;;
발표 당일, 난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발표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왼손은 어찌할지 몰라 의자 손잡이를 꽉 부여잡고 있었고, 중간쯤부터는 너무 부끄러워서 눈을 감고 반을 외워서 발표했다.
생각보다 반응은 괜찮았다. 나올만한 지적들이 나왔고,
무엇보다 지도교수님의 디펜스가 감동이었다.
발표 후에 사람들이 죄다 "선생님에 널 사랑하시나봐"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나 역시 절을 백번 드리고 싶을 정도로 쉴드를 쳐주셨다.
발표문을 읽고 난 뒤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런 말도 못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나 대신 모든 대답을 해주셨으니,
선생님의 노고에 대해서는 정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발표가 끝난 날, 선생님게서 수고했으니 조금 더 고생하자라는 메일을 보내신 걸 확인했을 때, 난 진짜 눈물이 날 뻔했다. 선생님께서 내가 쏟으신 애정이 이 정도이니 사람들이 그런 인상을 받았더라도 할말은 없다.
그러나 나만 알 것이다.
그런 시간이 오기까지 내가 얼마나 혼이 났는지.
한번은 간단하게 목차 아닌 목차를 적어 갔는데,
어찌나 화를 내시던지.
이런 '거지같은' 걸 들고왔냐는 둥, 넌 어떻게 교수가 이렇게 챙겨주는게 그렇게 당연한 대접을 받는다는듯이 가만히 있을 수 있냐는 둥, 온갖 폭언 아닌 폭언을 듣고 나와 반나절을 공황상태에 빠져 지냈다.
심지어는 "난 공부하면 안되나봐"라던가, "나 논문 못 쓸 재목인가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마 ㅈㅌ오빠가 많이 다독거려줘서 약간이나마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선생님께서 쏟아부으신 말들이 내 마음 속에서 깊은 뿌리를 내려 논문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쳤을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그래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발표문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선생님께 보여드렸던 것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그걸 보신 선생님께선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상상은 간다. (그래도 당시 내 마음 속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것 같다.)
발표를 끝내고 나서는 학교를 뛰쳐나가 머리를 했다.
상쾌하게.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서 선생님과 발표 때 나왔던 지적사항들을 정리했다.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전개할 방향을 제시해주셨고, 난 알았다고 대답하고 다시 학교를 뛰쳐나갈 생각만 했다.
그리고는 ㅎㅎ와 ㅇㅇ이를 꼬셔 족발을 먹으러 갔다.
사실은 다른 사람들과 다같이 뭘 먹으며 마음 속에 쌓였던 응어리들을 풀고 싶었으나,
그 둘 밖에 없었다.........
ㅇㅇ이와는 그렇게 '친'하진 않았는데,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가까워 진 것 같다. 후후.
이전에는 트위터를 통해서만 대화를 했고, ㅎㅎ가 없으면 살짝 어색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둘이 있어도 재밌게 수다를 떠는 정도가 되었으니.
사실 ㅇㅇ이나 ㅎㅎ가 없었으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버팀목이 되어줬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 수헙생 소녀들처럼 커피를 마시면서,
혹은 각자 공부를 하다가 틈틈이 우리는 수다를 떨었고, 논문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다스렸다.
그들은 어쨌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난 그랬다.
난 아마 그 둘이 없었으면 외로움에 무슨 짓을 벌였을지 모르겠다.
우리끼리 나가서 저녁을 먹기도 했고, 서로 누가 언제 연구실에 나왔는지 체크를 해가며 각자 논문을 준비했다.
논문은 '준비'했다고 하는 이유는...내가 11월달 내내 아무 것도 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발표 다음날에도 나를 학회에 나오라고 부르실 정도로,
학회 뒷풀이에까지 날 데려가실 정도로 애정은 많으시나 "내가 논문 쓰는 거...신경 안쓰시나?"싶을 정도로 논문 진행상황에 무관심하신 듯 보였고, 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있었다.
참, 발표 다음날 학회 뒷풀이도 참 재밌었다.
저녁을 먹고 2차로 맥주를 드시러가는 교수님들 사이에서 난 살짝 빠져나갈까 고민을 하며 밍기적거리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날 포착하시고서는 같이 들어가자 하셨다.
그랬더니 다른 선생님께서 "선생님, 이 학생만 너무 이뻐하시는 거 아녜요?"라고 장난스레 물었고
선생님께서는 "그렇지? 너무 티나지? 난 좋은데, 얜 괴로워."라며 "우린 이미 공인된 사이니까, 어서 들어와"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2차까지 들어가게 된 나는 선생님 옆에 붙어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건,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 선생님의 과거를 폭로할 때였다.
나야 뭐, 10월달에 있던 집중세미나 뒷풀이에서 선생님과 노래방에서 둘이 노래도 부른 적이 있고, 선생님의 주량을 알고 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끼리만 있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 건 참 신기했다.
(자세한 에피소드는 개인 사생활 보호상 언급할 수는 없음. 단, 선생님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그리 크게 다르진 않다....)
생각해보면, 지금 나랑 같이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몇년 후면 다 '선생님'들이 될텐데,
우리들도 사석에서 그렇게 놀겠지-싶다.
그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십년 후에 ㅈㅌ오빠한테 "서선생님", ㅅㅎ한테 "조선생님"하면서 지낼 생각을 하면, 뭔가 짜릿하면서 즐겁다.
같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인연이 쭉 이어진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거,
정말 좋은 거다. 축복인거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보면...
11월 말에 대학원 엠티를 갔다.
강화도로 갔는데, 경주에 이어 정말 즐거웠다.
예산도 높게 책정되어 초호화 엠티를 갔다왔다.
버스를 대절해서 편하게 이동하고,
낮에는 회, 저녁에는 한우로 포식했다.
석모도에 가서 보문사도 구경하고, 시간이 남아 근처 카페에 들어가 커피도 마셨다.
그때만큼은 수학여행 간 고딩때의 마인드로 돌아갔던 것 같다.
그냥 아무런 고민없이 하하호호 웃으며 사진 찍고, 장난치고..
그러나 문제는 밤에 술을 먹을 때 벌어졌다.
처음에는 맥주 페트병 5개만 사갔는데, 내가 밤에 합류하신 지도교수님에게 그걸 일러바치는 바람에 추가로 술을 더 사온 것이다. 난 왠지 모를 의무감에 술을 마구 들이키기 시작했고, 결국 내가 만취해버리는 시츄에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난 정말이지 일년에 한두번 만취한다.
웬만하면 깽이 있을 때나 그러는데, 하필이면 대학원 사람들과 지도교수님이 옆에 있을 때 그래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지금 돌이켜봐도 오글거리며 머리를 쥐어뜯고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백만번할 일이다.
드문드문 나는 기억으로 난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를 불렀다.
직접 목격한 후배 말로는 소리는 무지 컸으나, 가사 전달율은 30%였다고 하고,
그 전에 자러 들어간 선배 말에 따르면 양희은 노래만 몇백번을 불렀을 것이라고.....ㅡㅡ;;;
그런 광란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난 당연히 일어나지 못했다.
거실에 뻗어 자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해 침대가 있는 방에 가서 누웠다.
누워서 자고 있는데 임조교님께서 날 깨우시고, 누군가가(아직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날 배개로 때리기 시작했다.
결국 난 일어났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서는 속이 불편하여 혹시나 실수를 할까봐 창문을 열고 손에는 검은 봉투를 꼭 잡고서는 잠에 들었다.
사당에 내려서는....속을 게워내고 기숙사에 들어와 뻗어버렸다....
몇시간을 자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해장은 해야겠는데 도저히 혼자 뭘 먹을 기분이 안나서 깽을 불러내어 일본식 라멘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선생님 한 분께서 대학원생들 밥을 사주시겠다고 하셨기에 당연히(;;;;) 갔다.
원래 스케쥴은 거기서 저녁을 먹고 나와서 예전에 약속했던대로 ㅅㅎ와 함께 양집에 가기로 되어있었다.
내가 하도 양집에서 술을 먹다보니 주위 사람들이 궁금했을 터, ㅅㅎ가 한 번 가보고 싶다기에 같이 가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저녁자리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맥주를 시키기 시작했는데...내가 풀가동되었다면 빨리 비워졌을테지만, 전날의 과음과 양집에 가기로 기약했던 바가 있었기에 난 굉장히 조절을 하며 술을 마셨고, 맥주병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비워졌다.
그리고 다 비울즈음에는 선생님께서 다시 맥주를 들고 오셨고,
'간단한' 저녁식사는 10시 반에 끝나게 되었다.
그래도 양집에는 가야한다는 일념하에 ㅅㅎ와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왠지 모르게 한산했던 그날, 우리는 각자 진토닉을 마시며 그동안 못나눈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문학석사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연구실이 달라서인지 제대로 대화 한 번 못나눴던 것이었다.
솔직히, 이전까지 나는 한달동안 아무 것도 쓴 것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ㅇㅇ이와 ㅎㅎ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논문진행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ㅅㅎ와 얘기하면서, 그녀 역시 개요발표 이후 슬럼프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다소 마음이 가벼워진 나 역시 솔직하게 내 상황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냥 얘기만 했을 뿐인데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렸다.
그리고 힘을 얻었다.
할 수 있다고.
제2차 요지발표가 얼마 안 남았지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다음날부터 그냥 마구잡이로 쓰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것들을, 정리해놨던 것들을 마구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진도는 지지부진했다.
계속해서 '아무 것도 안해놨다'는 생각때문에, 늦어지는 진도때문에 불안해졌고 불안해질수록 글은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는 이주만에 쓰던 것마저 엎어버리고 새로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소리내어 읽으면 한시간에 20페이지 정도, 묵독하면 50페이지 정도면 읽을 수 있는 양이 나오면 되기에 그냥 발표용 스크립트를 쓰면 될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에 따르면 ~다. 즉, XX 한 것이다"를 "그에 따르면 ~한 것입니다. 즉, XX하다는 거죠"로 풀어쓰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을 해놓으니, 글이 훨씬 수월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장씩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정말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도교수님께서도 호출하지 않으셨고 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선생님께 찾아가지도 않았다.
발표는 12월 22일 목요일, 내가 다시 쓰기 시작한 건 13일 화요일.
선생님들께는 19일 월요일날 드리기로 하면 남은 시간은 일주일.
그 생각만으로 버티고 글을 썼다.
그러나 금요일이 되자 내 머리는 마비가 되어버렸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목표분량의 50%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막혀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일찍 들어와서 쉬려했다.
주말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것이었다.
그 때! 저녁 7시에!! 지도교수님이 전화를 하셨다.
왜 안 찾아오냐고.
너 그렇게 자신있냐고.
왜 자기가 찾을 때까지 이렇게 아무 말도 안하고 있냐고.
얼마나 썼냐고.
언제 보내줄 것이냐고.
다급해진 나는 내일,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까지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토요일 아침....이 아닌 대낮에 일어나 연구실로 갔다.
가서 열심히, 미친듯이 글을 써내려갔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점심, 저녁 먹은 시간이랑 중간에 30분 가량 낮잠을 잔 시간을 포함해서 총 10시간만에 난 탈고를 했고,
밤 9시에 선생님게 메일을 보냈다.
뭐, 분량으로 따지자면 목표에서 열페이지정도 모자랐고, 결론도 쓰지 못했지만 가장 중요한 본론은 끝낸 것이다.
그 때의 쾌감이란!
메일을 보내고나니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난 잠시 안정을 취하고자 난장판이었던 연구실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면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불안한 것도, 평화로운 것도 아닌 기분.
해낼 수 없는 것을 해버린 기분. 해방감 비스무리한 쾌감.
어찌저찌해서 2차 요지발표까지 끝냈다.
그리고 오늘처럼 한산한 카페에 앉아 올 한 해를 정리할 시간까지 얻었다.
오늘 나는 주말에 구운 컵케이크를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선물로 나눠줬고,
아빠 목도리와 내 목도리를 뜨고 있으며, 간간히 일을 하고 있다.
마음에 여유를 찾아서인지 저녁도 학교 밖에 나와 먹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넷북으로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고 있다.
폭풍같은 일년이었다.
웃기도 많이 웃었고, 술도 많이 먹었고, 실수도 꽤 했다.
누군가에게 설레어보기도 했고, 그 누구 때문에 눈물도 꽤 흘렸다.
지금 마음은 평화롭다.
칼바람이 쌩쌩 불어도 마음은 따뜻하다.
올해의 키워드는 뭐니뭐니해도 '논문'이겠지만, 간간히 잘 놀기도 한 것 같다.
마음도 지멋대로 움직인 걸 보면, 피폐하게만 보낸 시간은 아닌 듯 싶다.
나의 2011년은 꽤 쓸만했다.
- 오늘의 테마 - 논문, 공부, 나.
- eXprEsSioN
- 2011/08/20 14:48
- 논문, 오늘의 테마, 잡설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쓰기를 시작했다. 참고문헌들을 읽으면서 갈팡질팡하다가 머리 속으로 한참을 구상하고 나름 윤곽을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2주간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에서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또 지금까지 어찌나 나이브하게 주제에 접근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일주일동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한참을 방황했다. 선생님께서는 대략적인 가이드라인만으로는 내가 절대로 논문을 못 쓸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셨는지 이번주에는 과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내주셨다. 덕분에 난 하루에 Task를 하나씩 해결해야하는 빡센 스케쥴을 소화해내려 하루종일 좌불안석이다. 어제는 그래도 나름 무언가를 해낸 것 같은데 가장 쉬운 것부터 처리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오늘의 과제를 시작하기 전 이렇게 노닥거리는 내 모습이 이상하지도 않다.
걱정이 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려는 말이 뭘까? 내 주장이 타당한가? 내가 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만큼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가?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면 지금 정리하고 있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토해낼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졌는가? 아니, 그보다 내가 그동안 그 능력을 충분히 길렀는가? 너무 부족하진 않은가? 발표장에 들어서서 돌처럼 굳어버리진 않을까? 내 발표를 들은 사람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진 않을까? 건설적인 비판마저 개인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삐뚤어진 마음상태는 어떻게해야 치료가 될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덕분에 눈을 깜빡거리는 틱현상이 컴백해주셨고, 친구들의 연락에 일일이 답해줄 정신적 여력도 고갈되었다. 그러나 만나자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과의 약속을 수차례 미룬 결과, 어제와 내일 다시 한번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게 생겼다. [물론, 예전에 과외를 뛰면서 수업을 들었던 때, 과외시간에 늦을까봐 강변북로를 120km 밟던 그때만큼 '살인적'이진 않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충분히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압박적이다.]
그 와중에 지인이 정신적으로 쇠약한 상태임을 뒤늦게 깨닫는다던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눈치 못채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느껴지는 자괴감은 스트레스를 배가시킬따름이다. 죽겠다. 그래서인지, 술만 술술 들어가고 주량은 점차 늘어가는 것 같다. 체력은 뒷받쳐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따위, 개나 주라지. 지금은 그런 것따위를 운운할 정도의 정신줄도 잡을 수 없다.
게다가 요즘 계속 자기 전에 약을 먹는 걸 깜빡한다. 그래서일까. 점점 더 예민해진다. 촉을 세운다. 그러다가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다. 대화에 귀를 기울이긴 하지만 능동적으로 참여를 할만한 기운이 없다. 이럴 때 새삼 내가 내성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스트레스 받을 때 밖에 나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보다 방에 콕 박혀 컴퓨터 게임을 주구장창하는 게 훨씬 더 좋다. 짜증이 날 때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짜증이 날 때는 나에게서 발산되는 짜증에너지를 마구마구 퍼뜨릴 상대가 필요하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밖으로 밀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다 때려치우지 왜 여지껏 여기 앉아있느냐고 묻는다면...휴우. 그 질문은 지난 일주일동안 나 자신에게 몇백번이고 물었드랬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어디 취직을 하거나 다른 길을 찾으면 안될 것도 없는데 나는 스스로를 이런 지경에 몰고가는가....
결론은, 그래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세상의 이치. 세상이 돌아가게 만드는 톱니바퀴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좋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사람들의 공통점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내 주변 환경에 많이 휘둘렸다. 좋게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이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내 옆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고 살아가는지를 엿보며 그것을 따라하면서 살아갔다. 어떤 사람은 강렬한 빨강색을, 어떤 사람은 푸르른 녹색을 띠고 내면에서 빛을 발산하며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데 나는 스스로를 무색무취로 느꼈다. 취향이나 선호도 불분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A가 좋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상황에 처하면 A보다는 B를 선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불만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리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 말이 맞고, 반대편에 있는 저 사람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 말이 맞으니까. 두 개의 대립적인 주장을 듣고 그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친구들을 보면 언제나 감탄을 하면서 부러웠다. 그래, 저 친구들은 확고한 중심이 있으니까 저게 가능할꺼야-라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나의 무능력을 탓했다. 난 멍청하니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못하는 바보니까 이리저리 휘둘리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질 못하는거야-라고.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게 좋았다. 그저 문제 하나를 더 맞춰 점수를 1점이나마 올리려는 의도에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정말 궁금했다. 모든 것이. 어렸을 적 미친듯이 파고들었던 추리소설들에 등장하는 탐정, 특히 나의 우상이었던 셜록 홈즈처럼 박학다식하면 무언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대학와서도 내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목표했던만큼 많이 하진 못했지만, 나에게 공부란 어차피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이론들을 꿰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인간들, 정말이지 혜안을 지닌, 박학다식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어떤 책에서 읽지 못할 지식들을 알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 '공부'의 진정한 의미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이해하는 것,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 그런 것들. 아직도 학문의 차원에서 난 많이 모자르다. 나도 안다. 그러나 하루하루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사회적 사안에 대하여 무엇이 옳은지, 내가 그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고 싶은지 파악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스스로에 대하여 대견스럽다.
지금은, 그러니까 논문을 쓰는 지금은 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종합해서 사람들에게 내놓을 차례이다. 내가 느끼는 감상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해서 사람들을 설득시킬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라던가, 딱히 다른 걸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손에서 놓는다면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뭐가 뭔지 감도 못잡고 어리버리하게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고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이 시간은 (누가 봤을 때 엄살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고통은 주관적인 거니까) 내가 성장하는데 치루어야할 대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것만 견디면 난 조금 더 커져있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인간에 가까워지겠지.
-미니..^-^☆
걱정이 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려는 말이 뭘까? 내 주장이 타당한가? 내가 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만큼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가?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면 지금 정리하고 있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토해낼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졌는가? 아니, 그보다 내가 그동안 그 능력을 충분히 길렀는가? 너무 부족하진 않은가? 발표장에 들어서서 돌처럼 굳어버리진 않을까? 내 발표를 들은 사람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진 않을까? 건설적인 비판마저 개인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삐뚤어진 마음상태는 어떻게해야 치료가 될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덕분에 눈을 깜빡거리는 틱현상이 컴백해주셨고, 친구들의 연락에 일일이 답해줄 정신적 여력도 고갈되었다. 그러나 만나자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과의 약속을 수차례 미룬 결과, 어제와 내일 다시 한번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게 생겼다. [물론, 예전에 과외를 뛰면서 수업을 들었던 때, 과외시간에 늦을까봐 강변북로를 120km 밟던 그때만큼 '살인적'이진 않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충분히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압박적이다.]
그 와중에 지인이 정신적으로 쇠약한 상태임을 뒤늦게 깨닫는다던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눈치 못채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느껴지는 자괴감은 스트레스를 배가시킬따름이다. 죽겠다. 그래서인지, 술만 술술 들어가고 주량은 점차 늘어가는 것 같다. 체력은 뒷받쳐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따위, 개나 주라지. 지금은 그런 것따위를 운운할 정도의 정신줄도 잡을 수 없다.
게다가 요즘 계속 자기 전에 약을 먹는 걸 깜빡한다. 그래서일까. 점점 더 예민해진다. 촉을 세운다. 그러다가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다. 대화에 귀를 기울이긴 하지만 능동적으로 참여를 할만한 기운이 없다. 이럴 때 새삼 내가 내성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스트레스 받을 때 밖에 나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보다 방에 콕 박혀 컴퓨터 게임을 주구장창하는 게 훨씬 더 좋다. 짜증이 날 때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짜증이 날 때는 나에게서 발산되는 짜증에너지를 마구마구 퍼뜨릴 상대가 필요하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밖으로 밀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다 때려치우지 왜 여지껏 여기 앉아있느냐고 묻는다면...휴우. 그 질문은 지난 일주일동안 나 자신에게 몇백번이고 물었드랬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어디 취직을 하거나 다른 길을 찾으면 안될 것도 없는데 나는 스스로를 이런 지경에 몰고가는가....
결론은, 그래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세상의 이치. 세상이 돌아가게 만드는 톱니바퀴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좋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사람들의 공통점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내 주변 환경에 많이 휘둘렸다. 좋게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이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내 옆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고 살아가는지를 엿보며 그것을 따라하면서 살아갔다. 어떤 사람은 강렬한 빨강색을, 어떤 사람은 푸르른 녹색을 띠고 내면에서 빛을 발산하며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데 나는 스스로를 무색무취로 느꼈다. 취향이나 선호도 불분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A가 좋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상황에 처하면 A보다는 B를 선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불만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리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 말이 맞고, 반대편에 있는 저 사람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 말이 맞으니까. 두 개의 대립적인 주장을 듣고 그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친구들을 보면 언제나 감탄을 하면서 부러웠다. 그래, 저 친구들은 확고한 중심이 있으니까 저게 가능할꺼야-라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나의 무능력을 탓했다. 난 멍청하니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못하는 바보니까 이리저리 휘둘리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질 못하는거야-라고.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게 좋았다. 그저 문제 하나를 더 맞춰 점수를 1점이나마 올리려는 의도에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정말 궁금했다. 모든 것이. 어렸을 적 미친듯이 파고들었던 추리소설들에 등장하는 탐정, 특히 나의 우상이었던 셜록 홈즈처럼 박학다식하면 무언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대학와서도 내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목표했던만큼 많이 하진 못했지만, 나에게 공부란 어차피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이론들을 꿰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인간들, 정말이지 혜안을 지닌, 박학다식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어떤 책에서 읽지 못할 지식들을 알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 '공부'의 진정한 의미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이해하는 것,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 그런 것들. 아직도 학문의 차원에서 난 많이 모자르다. 나도 안다. 그러나 하루하루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사회적 사안에 대하여 무엇이 옳은지, 내가 그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고 싶은지 파악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스스로에 대하여 대견스럽다.
지금은, 그러니까 논문을 쓰는 지금은 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종합해서 사람들에게 내놓을 차례이다. 내가 느끼는 감상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해서 사람들을 설득시킬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라던가, 딱히 다른 걸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손에서 놓는다면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뭐가 뭔지 감도 못잡고 어리버리하게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고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이 시간은 (누가 봤을 때 엄살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고통은 주관적인 거니까) 내가 성장하는데 치루어야할 대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것만 견디면 난 조금 더 커져있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인간에 가까워지겠지.
-미니..^-^☆
- 오늘의 테마 - 대학생 부재자 투표 누락/무효화..?!?!
- eXprEsSioN
- 2010/05/30 03:58
- 오늘의 테마, 투표권이너무나간단하게무시되는이놈의대한민국쯧.
6ㆍ2 지방선거 부재자투표 접수 과정에서 대학생 수백명의 명단이 업무처리 잘못으로 누락되는 바람에 사실상 투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건 아래링크를 참조하시라...
한국일보 기사 (5월 27일자)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대학생 수백명이라 해봤자 전체 국민의 몇 %나 되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건 정말 아니다.
내가 굳이 "대학생"이라는 말을 강조하여 붙히는 까닭은, 대학생들이야 말로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갈 주요층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부재자투표를 굳이 신청해서까지 (잘 홍보도 되지 않는 대학 내의 부재자 투표 말이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학생들의 정치적 성향이 어떨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말도 안되는 '부재자 접수 누락'이 부단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은, 나의 과대망상일까?
게다가 이러한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나 역시 깽양이 뉴스에서 언뜻 본 것같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까마득히 모르고 지나갈 법한 이야기이다.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투표를 한다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인 것인데, 이러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학생들의 의지를 꺾는 이 놈의 나라는 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란 말인가.
기사에 따르면:
"선관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당 주소지 동사무소 등에 신청이 안 됐으니 투표 당일 원 주소지에서 투표를 하는 수밖에 없다. 우체국에 책임이 있으니 그 쪽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이들이 부재자 투표를 할 방법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 우체국에서 일일이 학생들에게 고향으로 가는 차편을 마련해주고, 스케쥴 조정까지 다 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이건 뭐...
정말, 이번 선거를 보면서 막판도 이런 막판이 없구나...말세라는 점을 뼈 속 깊이 느끼고 있지만, 이건 정말 "막장"이다.
드라마가 막장이라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완전 막장이라는 사실이 매우 슬프다.
- 미니..^-^☆
P.S.: 지나가면서 현수막같은 거 걸려있으면 다 읽어보는 편인데 (난 주민등록상 경기도라 살고 있는 서울과는 무관하지만) 참 웃기지도 않는 문구들이 많다. 그럴듯한 말만 같다 붙히면 다 되는 건가? 국민들을 호구로 아는 건지 원...난 경기도지사선거 후보자 토론회나 보고 자련다...열받아서 잠도 안오네.
한국일보 기사 (5월 27일자)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대학생 수백명이라 해봤자 전체 국민의 몇 %나 되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건 정말 아니다.
내가 굳이 "대학생"이라는 말을 강조하여 붙히는 까닭은, 대학생들이야 말로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갈 주요층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부재자투표를 굳이 신청해서까지 (잘 홍보도 되지 않는 대학 내의 부재자 투표 말이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학생들의 정치적 성향이 어떨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말도 안되는 '부재자 접수 누락'이 부단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은, 나의 과대망상일까?
게다가 이러한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나 역시 깽양이 뉴스에서 언뜻 본 것같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까마득히 모르고 지나갈 법한 이야기이다.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투표를 한다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인 것인데, 이러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학생들의 의지를 꺾는 이 놈의 나라는 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란 말인가.
기사에 따르면:
"선관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당 주소지 동사무소 등에 신청이 안 됐으니 투표 당일 원 주소지에서 투표를 하는 수밖에 없다. 우체국에 책임이 있으니 그 쪽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이들이 부재자 투표를 할 방법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 우체국에서 일일이 학생들에게 고향으로 가는 차편을 마련해주고, 스케쥴 조정까지 다 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이건 뭐...
정말, 이번 선거를 보면서 막판도 이런 막판이 없구나...말세라는 점을 뼈 속 깊이 느끼고 있지만, 이건 정말 "막장"이다.
드라마가 막장이라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완전 막장이라는 사실이 매우 슬프다.
- 미니..^-^☆
P.S.: 지나가면서 현수막같은 거 걸려있으면 다 읽어보는 편인데 (난 주민등록상 경기도라 살고 있는 서울과는 무관하지만) 참 웃기지도 않는 문구들이 많다. 그럴듯한 말만 같다 붙히면 다 되는 건가? 국민들을 호구로 아는 건지 원...난 경기도지사선거 후보자 토론회나 보고 자련다...열받아서 잠도 안오네.
- 오늘의 테마 - 글쓰기에 대한 염증
- eXprEsSioN
- 2010/05/20 18:18
- 글쓰기, 오늘의 테마, 텍스트가싫답니다
요즘 하루에 한 번씩 꼭 글을 쓰게 되는데,
이건 내가 꼭 할일이 없어서 라기 보다는 블로깅, 포스팅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압박, 부담이 덜해졌다고나 할까.
사실 내가 글을 쓰는 수준 자체가 무지하게 향상된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지만) 전혀 아니올시다.
하지만 난 그냥 내 수준이 이 정도임을 인정하고,
이 정도밖에 안되는 내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내 블로그에 내가 글을 저급한 수준으로 쓴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사실 난 글, 텍스트라는 것이 좀 싫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이 따라잡는 것도 힘든데, 하물며 텍스트로, 문자로는 그게 어떻게 가능해진단 말인가.
1초에 지구를 수백만바퀴를 돌 수 도 있고,
지난2000년 간의 인류의 역사를 뛰어넘을 수 있는 내 머리 속 관념이 어떻게 그 한 순간에 종이 위로 옮겨질 수 있단 말인가.
말로 하기에도 힘든 일인데.
그러니까 꼭 이런 느낌이다.
생각이 3차원적이라면, 말과 글은 2차원적이다.
내 생각이 얽혀있는 실뭉터기라면, 말과 글은 그 실타래를 풀어야지만 가능해진다.
이건 마치 본 적도 없는 ";ㅜㄴㅇ야ㅐㄴ로"이라는 생물이 있는데, 그 생물을 묘사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도 내 생각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귀찮고도 사실상 거의 말도 안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난 요즘 그 연습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 글로 쓰다보면 자꾸 설명을 해야 하고, 전제를 깔아야 하고, 등등 복잡해진다.
한 번에 여러가지를 말할 수도 없다. 너무 조잡해지니까.
꼬여있는 실뭉터기는 내 주머니 속에 그냥 들어가지만, 그걸 일일히 풀어놓으면 엄청난 공간이 드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어쨌든 번거로운 작업이다.
그래서 난 체질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글'이라는 것이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문학을 좋아서 전공한다는 것이 나의 영원한 모순이겠지만.
-미니..^-^☆
- 오늘의 테마 - 아는 사람의 블로그
- eXprEsSioN
- 2010/05/17 13:13
- 아는사람의블로깅, 오늘의 테마
내일 수업 예습을 하다 말고, 점심 시간을 목전에 두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포스팅을 하게 될 줄이야.
일단 컴퓨터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고, 맘 놓고 웹서핑을 하는 날도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이렇게 자료실 TA를 하고 있는 날 밖에 없으니, 월요일마다 글을 올리게 되는 것도 이상할 것 없겠지.
사실 여기 들어온 것도, 깽양이 블로그에 글을 써보고 싶다고 해서이다.
글을 써보겠다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지금까지 6년간의 연애생활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감내하고 있던 수많은 부조리함들을 이 세상에 터뜨리고 싶어서-정도?
그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대방의 억압과 무관심함.
자신에게는 그 화살표가 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대방의 전인류에 대한 무관심과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자신만은 예외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지난 나날들에 대한 배신감이 어젯밤 뭉치고 뭉쳐 한순간에 커다란 눈덩어리로 불어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지난 몇년동안, 너는 그 아이의 그러한 비합리적이고 고집불통이고 어떻게 보면 정말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인 언사들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냐는 말들을 우회적으로 던져보긴 했지만, 그 때마다 "난 예외야"라는 식의 반응을 수십번이고 수백번이고 경험했기 때문에 사실 나는 깽양을 포기하고 있었다(...고 지금에서야 소심하게 고백한다.)
기억력이 (비교적) 좋은 나에게 그 아이의 만행들과 어록을 작성해보라는 임무를 떠맡아버려인지,
지난 6년간 내가 들은 (따라서 빙산의 일각이라 추정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을 간략하게 정리만 해봐도 꽤 많다.
사건별로 정리하면: 2004년 크리스마스 선물 강요, 2005년 생일 (및 선물), 2006년 유럽여행사건, 2009년 외도 아닌 외도 등
군대에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사건이 있었다. 뭐- 이 것 말고도 명동 짧은 치마 여자 발언, 술자리 발언 등 겉으로 보기에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아이의 입에서는 거침 없이 성차별적 언행들이 쏟아져나왔지...
어쨌든 깽양은 스스로 이러한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하나씩 기록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티스토리 초대장을 주기로 했다. (참고로, 6장 남았다;;;)
그 초대장 보내려고 들어왔던 건데...(그 아이의 만행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언급을 피하기로 한다. 그걸 기록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라 결국 깽양의 숙제니까)
한때는 아는 사람들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을 자주 읽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별로...잘 들어가지 않는다. 예전만큼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아는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기분이 감당하기 힘들어서 이다.
주위에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주로 올리는 글들은 일기나 신변잡기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 일상의 어느 한 순간에 움츠러들고 있는 것들을 포착하고, 그에 대한 느낌 전반을 다루고 있는데, 난 그런 것들을 보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면서 결국 그 사람에 대하여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고, 둘은 스스로에게 느끼는 열등감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예를 들어 내가 어느날 A와 대화를 나누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가정해보자. 난 A와 함께 보낸 시간으로 인하여 A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우리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는 생각, 혹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날 A가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나와 있을 때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리라고는 짐작치도 못했던 내용이 담겨있으면, 난 그 시간에 대한 회의가 든다. 그리고 그 A와의 관계 또한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싫다.
후자의 경우, 사람들이 포착하는 것들, 그들의 감수성이 무던히 드러나는 글들을 읽었을 때, 공감가지 않고, 그래서 난 결국 이것밖에 안되는 범인 중 범인이구나 라는 생각이 나를 매우 괴롭힌다. 이건 분명 자기과신에서 온 것에 틀림 없지만, 누군가와 본질적인 면에서 소통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 너무 고역스럽다. 자기과신이건 뭐건 간에 부정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이 무섭다. 두렵다. 싫다.
또 역으로 날 아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 것이 달갑지 않다.
다만, 나는 "너희들이 알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 있어!"라고 어필하는 생각따위는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이렇게 지금처럼 내 블로그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웃기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그래도 무섭다. 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은밀한 생각들을 읽는 것과 날 아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기에.
그런데 또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난 그런 '은밀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니와, 누군가과 있을 때도 그때그때 드는 생각들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에 이렇게 숨기는 것의 의미 또한 없지 않을까.
-미니..^-^☆
- 오늘의 테마 - 옛날 노래, 요즘 노래
- eXprEsSioN
- 2010/04/19 11:53
- DJ DOC, 가요, 서태지와아이들, 오늘의 테마
난 mp3에 노래를 한번에 많이 넣고 한달 넘게 바꾸지 않는다.
그냥 랜덤반복재생으로 해서 쭉 듣는다.
어디 멀리 나갈때는 물론, 손빨래를 하거나 집앞 편의점에 갈 때, 혹은 오디오 켜기 귀찮을 때 계속 mp3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다.
어쨌든 한번에 웬만한 노래를 다 넣고 다니다 보니 내 mp3는 온갖 장르와 국적을 불문한 아티스트들의 노래, 아니 음악들로 가득차있다. 직접 산 CD에서 리핑한 것들도 있지만, 예전부터 여기저기서 다운받았던 음악파일들과, 요즘은 그래도 나름 양심적으로 살고자 벅스같은 곳에서 구매한 음악들이 다 뒤섞여서 분류도 제대로 안되고, 뭐, 여튼 뒤죽박죽이다.
서두가 너무 길군;
하여간에 요즘 귀에 꽂힌 곡들이 있는데,
그건 '누나들의 로망'이라는 '짐승돌' 2pm도 아니오,
인터넷창만 띄우면 보이는 '국민 섹시 여가수' 이효리도 아니오,
내 사랑이자 '표절의 아이콘'이 되어버린(이런 말쓰면 불쾌하려나;;) 지드래곤님도 아니오,
90년대를 나름 주름잡았던 서태지와 아이들과 DJ DOC의 노래들이다.
[지금 써놓고 보니 두 그룹 사이에 공통점이 약간 있는데,
세명의 남성으로 구성되었다는 점과 사회비판적인 노래들로 이슈가 되었다는 점,
연예인인데 사회면에도 나왔다는 점(?) 등등 을 꼽을 수 있겠다. 흠. 인식하진 못했는데 지금보니 그렇군.]
그들의 노래들이 왜 귀에 꽂혔는가-하면,
요즘에는 그런 노래들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는,
최소한 그 때만큼 유행을 한다거나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이다.
일단 나의 (한때) 우상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들을 대강 훑어볼까나-
모르면 간첩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아니 간첩도 알만한 그들의 대뷔곡 "난 알아요".
혹자는 최고의 평가를 받을법한 대중가요라고도 하고,
혹자는 최초의 한국랩이라고도 하고,
긍정적인 평들이 무지하게 많다.
물론, 이를 부정하고 "난 알아요" 이전에도 랩은 있었다, 누가 이 노래를 최고라고 평가하느냐-로 반박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 노래가 최초의 랩이 아니었어도, 음악적으로 허접한 면들이 있어도 (예를 들어 "난 알아요 대뷔무대에서 하광진씨가 말한 것과 같은 멜로디라인의 빈약함이라던가- 전문가가 했던 말이니깐 맞겠지뭐;;), 이 노래를 깔아뭉개려는 사람들이 하는 반박들이 아무리 타당성이 있다고 해도 "난 알아요" 없는 한국 가요계를 논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인 이 "난 알아요"라는 곡은 한국 가요계의 패러다음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낮은 연령층이 가요의 주소비층이 되었고, '딴따라'들이 하는 짓거리가 신문 사회면에 나오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어딘가 깊이 내재되어있던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심이 폭발할 수 있는, 그래서 '신세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에 이르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난 알아요"에 대해서 음악적으로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는지 난 잘 모른다. 그 노랫말이 또다른 하나의 '한심한 사랑타령'일 뿐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사회문화적으로 그렇게 한 국가의 가요계의 판도를 바꾼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점은 누가봐도 인정해줘야할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더 혁신적인 시도들이 있었는데, 그보다 질적으로 훨씬 낮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이 대중적이어서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대중들 (이 경우에는 학생들에 국한되었지만;)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 자체는 왜 간과하는가. 제아무리 한 작품의 수준이 높아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될 수 없다면 그것도 하나의 문제점이라고 봐야하지 않는가. 당시 대중들의 눈이 너무 낮아서 정말 어떤 혁신적이고 새롭고 예술적인 가요를 못알아차리고 넘어갔다치자, 그런 노래가 역사 속에 묻혀버린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나, "난 알아요"를 깔아뭉개는 주장의 뒷받침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본다.
각설하고, 두번째 앨범, "하여가"로 넘어가 보자. 국악과 가요의 퓨전이 최초로.......이루어...진 거 맞나? "최초"라는 말을 함부로 붙히기 어려워서...어쨌든 "난 알아요"가 최초의 랩이 아니었어도 대단한 것처럼 이 곡이 '최초의' 퓨전이 아니어도 대단했던 곡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곡의 노랫말도 사랑타령이다. 흠.
그러나 "난 알아요"와 "하여가"의 노랫말이 진부한 것일지라도,
그 형식의 파격성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가사마저 난해하거나 사랑이 아닌 다른 주제를 건드렸더라면
대중들의 공감을 살 수 없지 않았을까?
(때문에 내가 서태지를 정말 좋아했고, 아직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를 '100%의 순도를 자랑하는 위대한 아티스트이자 천재'라고 부르기를 꺼려하고 '상업적으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라고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봤을 때, 노랫말은 진부하더라도 형식면에서의 신선함과 충격(??)은 상투적인 가사를 뒤덮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고로, 패쓰-
이후에 나온 두 앨범은 대놓고 사회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3집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는 남북통일을, "교실이데아"는 학교교육을 비판하였으며,
4집 "컴백홈"은 제목 그대로 가출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고,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는 당시의 세태,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했고, "시대유감"은 기득권층을 비꼰 내용을 가사가 삭제된채로 정규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렇다, 그 당시 우리 나라, 매우 검열이 심했다...ㅎㄷㄷ "필승"에서 "널 죽일꺼야" 부분을 삐-처리해서 발매했던 과거를 잊을 수 없다;;;;)
요즘 내 귀에 꽂힌 (그래서 심지어 노래방에서도 부르는;;) "교실이데아"는 지금 들어도 너무 짜릿하다.
요즘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함께 공감하고 싶을 정도로...
이 외에도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앞서 언급했던 두번째 그룹에 대해서도 약간의 설명을 해야겠으니, 이정도로 하고 넘어가자. 킁;
DJ DOC...
멤버들이 요즘 예능에서 활약하고 계시던데..잘 보고 있습니다...네...그렇죠...
그러나 이하늘이 '놀러와'에서 말하거나 웃기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기고 말고를 다 떠나서 마음 속 한켠이 어두워진다.
"저런 사람이 왜...."
"저런 사람"이라는 말에는 많은 함의가 있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한 때 최고의(라고 말하면 또 누가 뭐라할까나? 그래도 이하늘씨 랩 잘하는 건 맞는데...) 랩퍼였고, 기득권층을 깔보면서 "내 스타일"대로 사는 것을 추구했던, 내 느낌으로는 자유로운 영혼의 표상이었는데......
비주류의 우상이랄까. 매우 다른 방식이지만, 고교중퇴한 서태지와 마찬가지로 몸소 사회 제도를 탈피하여 비판의 주체로 자리를 잡은 장본인 중 하나였는데...참..울컥할 정도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쨌든, DJ DOC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서만큼 잘 알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전집을 사서 모든 곡들을 1000번도 넘게 들거나 가사를 아직까지도 외우고 있을 정도는 아니니깐.
다만, 2000년도에 나왔던 5집 "The Life...DOC Blues"는 내 인생에 절대 없어서는 안될 음반 중 하나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앨범이 없었더라면...난, 아마 그 어떤 분출구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앨범 하나만에도 주옥같은 곡들이 쏟아진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L.I.E."라던가, "포조리"라던가, " 부익부 빈익빈" 부터, 또 사랑이 어쩌네 저쩌네 하는 "비애", "아무도 모르게"까지, 뭐 하나 버릴 것 없는 앨범이다.
"포조리"에서는 대한민국 부패경찰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L.I.E."는 자신들의 bad publicity를 책임져야하는 기자들이나 검열제도에 대한 욕지꺼리(ㅋㅋ)를, "부익부 빈익빈"은 지금처럼 심하지도 않았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꼬집어 말하고 있다.
이들의 비판은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총체적이지 않고, 어떤 전반적인 사회현상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철저히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 눈"을 통해 보이는 현상들을 속 시원하게 욕을 하는 것이다.
물론, DJ DOC도 처음에는 "머피의 법칙"이나 "여름이야기"와 같은 대중적인 노래들로 인기를 끌었고, 아직까지 대중들은 그런 노래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DJ DOC와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주 큰 차이점을 보인다.)
그러나 4집 "삐걱삐걱"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처음부터 단지 말랑말랑하고 잘 팔리는 랩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랩'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들은 자신들이 몸소 체험한 사회의 부조리함을 폭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묻고 싶었겠지. "당신들은 왜 그래요?" "우리와 같은 생각하는 사람 없어요?" 라고.
하튼, DJ DOC의 5집을 듣고 있노라면 또다시 속이 시원하면서 동시에 암울해진다.
이들이 이러한 비판적인 성격을 잃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도맡는 인물이 없다는 현실에.
난 정말 궁금하다.
왜 요즘 아이돌은, 아니, 요즘 가수들은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검열도 예전보다 완화...(되...었...지???)...된 것 같고, 사회는 더욱 부조리해졌는데, 왜 다들 사랑이 어쩌네 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두가지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두가지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래서 정말 슬프다. 내 생각이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않아서-)
1. 가수들이 생각이 없거나 노래하고 싶지 않아한다. 혹은 소속사에서 못하게 한다.
2. 해봤자 대중들이 공감하지 않는다.
1번도 2번도 정말 슬픈일이다. 어떤 경우이건 간에 가요가 하나의 오락거리, 소비물로만 전락했다는 것이기에.
1번의 경우, 가뜩이나 힘든 가요계의 상황에서 그런 '팔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 혹은 '유행의 흐름에 어긋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부조리한 사회를 진정성을 갖고 비판할 이가 없다는 현실도 작용하는 것 같다.
서태지나 DJ DOC나, 모두 사회제도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경우이다. 그래서 외부인의 시각으로 사회제도의 모순이나 부조리함, 비합리성, 부패를 더 주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체험에서, 밑바닥인생(이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을 다 차치하고-)으로부터 나오는 진정성 있는 노랫말들과 파격성이 이들의 노래에 힘을 실어주었다고 난 생각한다.
반면, 그 이후 온 노래들 중 소위 "사회비판적"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들어보면,
누가 불렀는지 몰라도 90년대 서태지나 이하늘이 노래했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도 발빼려들지 않은 학교에서 자퇴를 했다거나, '양아치'로 낙인찍혀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경멸의 시선을 받아봤거나,
제대로 삐뚫어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부정적'인 사람들이 어찌보면 더 사회를 통찰력있게 비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내가 아무리 서울대를 비판하고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어 열변을 토해도, 난 그 안에 이미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통찰력이 생기지 않는 것과 통쾌하게 욕할 수 없는 문제와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돈이 많은데, 다른 돈많은 사람을 전부 욕할 수 없고, 부정한 방식으로 돈을 축적하고 투기를 하는 사람들만 욕할 수 있는 경우처럼...근데 그건 다른 문제이지 않는가. 우리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비판할 때, 우리는 착실하게 돈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들을 비판한다기 보다는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사회 구조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게되고 비판의식을 갖게 되는 것인데...어쨌든 뭔가 진정성이 결여된 사회비판이 문제인 것 같다.
1번 항목에 속하는 소속사의 지배력 얘기는 정말 꺼내고 싶지도 않다. 하아...불쌍한 아이돌분들....(하마터면 "불쌍한 아가들"이라 쓸뻔했다...요즘 애들 정말 어려...OTL)
2번, 대중들이 공감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마음이 쓰라린다.
정말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진짜로 내일 누군가가, 국민의 대부분이 알만한 가수가, 혹은 아이돌이 "교실이데아"같은 곡을 발표한다고 가정해보자.
작년 "아브라카다브라"만큼 히트를 칠까? 그에 대한 패러디나 UCC가 퍼지고퍼져셔 유행하게 될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전만큼 그 음악을 귀에 꽂고 다니면 고개를 끄덕이며 영향을 받을까?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가요는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정말 그냥 그저 즐기는 오락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마치 오락실에 300원 넣고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게임처럼.
음악을 오락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 가요도 음악이고, 음악은 예술이고, 예술을 단지 오락적인 기능만 수행하는 것은 아닐텐데.
언제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나도 분명 일조한 부분이 있을테고. 어디부서 이렇게 된 것일까.
이게 예술과 자본주의가 결합되어서 일어난 현상일까
아니면 정치적 무관심이 만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련된 현상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다른 원인이 있을까.
-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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