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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31 20110531

20110531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저번에도 한 번 먹혔으니 이번에도 먹힐까 하여
잠시 블로그에 들려 썰이라도 풀어볼까 한다.]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이 나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분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나쁜 상황에 처해있다.
표정이 굳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무슨 말을 해도 하나같이 다 가시돋힌 말들 뿐.
(아까 Y오빠가 건 장난에 "미친 거 아녜요?"라 응수를 한 건 정말 심했어. 물론, 사과를 했고 오빠가 받아주긴 했지만)
잘못했다간 사람도 치겠어. 큰일이야.
그냥 눈을 뜨고도 멍하게 있게 되. 무슨 생각이 많은 것도 아닌데.
계속 자우림의 "새"와 "망향"을 번갈아가며 듣고 더욱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어.

무엇때문인가.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을 제거할 방도를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한데 그 이유라는 것이 비단 한가지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오늘은, 몇 주 전 수요일 때처럼 아무런 이유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하긴, 그 때는 두 시간동안 울면서도 '내가 왜 이러지? 나 미쳤나? 혹시 정말 정신분열증인가?' 싶었으니.)

시작은 다음과 같다:
지난주 내내 그가 꿈에 나왔다.
꿈 자체는 별로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가 꿈에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한 것도 아니며,
사실 지금 그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는 것도 아니다.
고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그 사람을 꿈을 꾸다가
금요일날 대학원 모 후배와 모 선배와 함께 새벽 3시까지 술자리를 가진 후, 잠에 들어 또다시 꿈을 꾸었다.
아니나다를까. 그가 또다시 꿈에 나왔다.
꿈에서 그는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난 그가 지나치는 것을 보다가 그가 왔던 길을 다시 보았는데 그곳에 어떤 여인네가 따라오고 있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천상 여자다-싶은, 여리여리한 여자사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간간히 그의 이름이 들려왔다.
물었다. "저게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인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응. 몰랐어?" 였다.
난 그녀를 다시 보았고, 좀 전보다는 나와 가까워진 그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내가 아무리 뭘해도 저 사람의 발끝에도 못 미치겠구나-'였다.
그리고 그 순간 깼다.
기분이...나쁜 게 아니라 묘했다.
그냥 "뭐지?"라는 느낌.
그 꿈은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주말 내내.
그리고 어제까지.
그런데..

왜 가끔 그런 날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없었던 시간과 공간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을 누군가에게 들은 순간
마치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것처럼 상황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
어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씩 맞춰져 간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이 코앞에 와있는 것 같다.
아니, 실상 내가 몇달동안 두려워했던 일이 아직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현실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만 해도 기분이 이렇게 나쁘진 않았다.
모 후배는 나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겠노라(고 두달 전부터 말을 했었지만 계속 잊고 있었는데)했고,
내일, 즉 오늘 (화요일)이 어떻냐고 물었다.
좋다고. 무조건 좋다고.
한참 들떠서 어떤 옷을 입을지, 화장은 어느 정도로 해야할지, 신발은 뭘로 신으며, 머리는 풀러야할지 묶어야할지를 고민했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분이 나빴다.
어제 나빴어야할 기분이 그 때는 프로세싱이 되지 않았는지 오늘, 지금 현재까지 계속 기분이 좋지 아니하다.

그것때문일까?
그와 관련된 나의 두려움 때문일까?
오직 그 이유 하나만일까?
그럴 수도 있다. 충분히.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지난 몇년간 경험했던 그 끔찍한 징크스가 이번에도 발동이 걸렸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28년 (만 27년)밖에 살지 않은 (비교적) 짧은 세월동안
똑같은 일이 5번이 아닌 6번째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놈의 빌어먹을 징크스.
중학교 때부터 징하게 나를 따라붙었던 징크스.
내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호감이 생길 때 (난 단한번도 첫눈에 반하거나 그래 본 적이 없었으니. 항상 상대방을 한참 본 후에서야 그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애매한 시간(통상 두달에서 세달 정도. 짧으면 한달이기도-)이 지나면 상대방이 연애를 시작하는, 그 X같은 징크스.
게다가 한창 감수성이 풍부하던 신입생 꼬꼬마 시절에 한번 된통 당한 이후로 거기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질 못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그 때만 해도 난 참 착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으면 난 그 사람을 위해 정말 행복했었고 축복해주었다.
둘이 오래 가길 빌었고, 내 감정 따위는 어차피 나 혼자만의 것이니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할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누군가의 옆에서 따스한 눈길을 보내며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옆자리에 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만들기는 했으나, 어느 정도 참고, 짓누르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이제는 생기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많아진다는 말이 정말 맞던가.

욕심이다. 욕심.
나에게 없는 그 한가지를 채우려는 욕심.
내가 원하는 사람을 갖고 싶다는 소유욕.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만 해도 내 마음이 아파오는 이기심.
상대방이 연애를 시작하면 축복해주기는 커녕 혼자 방에 틀어박혀 침대에 누워만 있는 나의 이 한심스러움.
다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욕심. 버려야할 욕심. 지금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갖고 싶게 만드는 못된 마음.

이렇게 무언가 발단이 되어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하면 평소에는 억누르고 있던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과 끔찍했던 경험들이,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에 빠진다.
현재 그런 상태이다.
지금 떠오르는 많은 것들은...
어젯밤에 소개팅에 입고 나갈 옷들을 입으면서, 거울을 보고 (난 원래 거울 보는 걸 정말 안 좋아한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거울을 어제처럼 자주 보질 않는다.) 오랜만에 느낀 혐오감. 이건 인간의 몸이 아니군.이라는 생각과 순간 내 몸이 너무나 역겨워지는 그 순간. 마치 옷을 벗어 던져버리듯이 내 몸을 벗어던지고 싶은 욕망. 무엇을 입어도, 내 얼굴에 무슨 짓을 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철저한 자기부정과 자기혐오.
어느 순간 나이만 먹고 나아진 것 하나 없이 이 자리에 있는 나에 대한 실망감.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그 무엇 하나 개선된 것은 없고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이 상황.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이 무지함에 대한 질책.
학교는 어제 비상총회를 열어 말도 안되게 날치기 통과된 법인화를 반대하고 있는데,
지금 현재까지 본부를 점령하고 있다는데 거기에 동참을 하지 못할 망정 거기까지 미치지도 않는 신경.
무신경함. 내 고민이 더 중요하게만 느껴지는 이 유아기적인 이기심.
분명 법인화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현실이나 학교관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인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나 나나 분명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텐데 나는 거기 없고 그들은 거기에 있다.
부끄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안좋은 이 마음을 해결할 수 없어 미칠 것만 같다.
내 주위에는 너무나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 모든 신경은 내 마음 상태와 기분에만 쏠려 있는 이런...정말 '유아기적 이기심'.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닥치는 불행한 일들.
누군가는 나이 서른 먹고 부모가 던진 물품에 맞아 허벅지에 멍이 들고,
누구는 라깡의 거울단계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몸만 어른인 아이와 연애를 하는 바람에 눈물이 마를 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죄다 나에게 쏟아붓는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뭐해?"라고 묻는다.
나오라고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아도 나갈 수 밖에 없고,
내가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 밖에 없다.
세상에는 분명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고,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을텐데,
왜 내 주위에는 받는 사람들 밖에 없는 걸까.
차라리 상처를 주는 나쁜 사람들과 어울린다면 나도 같이 아프진 않을텐데.
나도 같이 나빠져서 남의 아픔에 웃을 수 있다면 좋을까?
.
.
.
그런데, 지금 갑자기 대학원 동기가 나에게 장난을 걸었다.
깜빡 속아버리고는 웃음이 났다.
잠시 비치는 햇살처럼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그래, 인간관계라는 게 어차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인 한, 그것때문에 내가 힘들어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다른 사람들 불편하게 하면서 있을 필요는 없을지도...

일단, 오늘 하루만 잘 넘겨보자.
난, 오늘 저녁에 소개팅도 있고.
해야할 공부도 많고.
그리고 설령 내가 두려워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더라도
그 때 가서 방문 틀어 잠그고 들어가 있으면 되지, 지금부터 그럴 필요는 없잖아?

-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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