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에 해당되는 글 5건
- 2012/01/26 20120126 근황
- 2012/01/17 20120117 인수인계 및 차후 논문 계획 (4)
- 2011/12/29 20111228 여유로운 나날들 + 논문 후기
- 2011/08/20 오늘의 테마 - 논문, 공부, 나.
- 2010/10/25 오늘의 테마: 문학과 카프카 (&...my 논문)
- 20120126 근황
- iMPrEsSioN
- 2012/01/26 20:12
- 논문, 새해결심, 오늘하루
누가 내 근황을 굳이 궁금해하겠느냐마는, 글은 읽는 사람에게 중요한 만큼 쓰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몇 글자 끄적여본다.
아름다운 설연휴를 보내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연휴가 왜 아름다웠냐고?
자고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패턴 무한루프의 생활화랄까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었다.
간간히 동생과 엄마와 고스톱을 치긴 했지만, 연휴 동안 통틀어 2만원을 잃었으니 그건 굳이 '잘 쉬었다'라고 표현하긴 힘들테고.
어찌되었건 잘 놀았다.
그리고 새해 첫 날에는 정하지 못했던 새해 목표를 세웠기에 묵은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도 가뿐하다.
올해는 꾸준히 운동을 할 것이다.
다만, 아직 무슨 운동을 할지 정하지 못한 게 문제다.
예전에 잠시 배웠던 살사를 할까, 아니면 작년에 갑작스런 폐강때문에 아쉽게 그만두어야했던 필라테스를 다시 할까.
살사의 장점이라면, 일단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밌고, 즐겁기도 하다.
'운동'했다기 보다는 그냥 '놀았다'라는 느낌이 강하달까?
춤은 사교적인 활동에 속하기 때문에 어디 가서 응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이 장점들은 또한 단점이 되기도 한다.
동호회활동을 하고 누군가와 함께 해야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비록 히키코모리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나에게 꽤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끔 한다.
한편으로는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관계란 족쇄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언제나 갈등도 있는 법. 말이 돌기도 하고, 꽤나 귀찮은 일이 될수도 있다.
반면 필라테스는 어떠한가.
기본적으로 혼자서 하는 거다.
그래서 집에서 심심할 때 복습할 수도 있다.
살사처럼 동적이진 않지만 에너지 소모가 꽤 많이 되기 때문에 운동이 확실히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원에서 듣는 필라테스 강좌는 살사보다는 비쌀뿐더러 '혼자서' 해야하는 운동이 가진 단점도 안고 있다.
혼자서 하는 것은 지루하다.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살사에 비해 필라테스의 큰 단점이다.
사실 어찌보면 정반대의 극에 있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건데, 똑같은 지점에서 장/단이 갈린다.
혼자하는 것과 함께 하는 것. 둘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조교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아직 감이 잘 잡히지 않아 어리버리하게 닥친 일들만 해치우고 있다.
마치 게임에서 테스크를 완료해야하는 기분이다.
오늘은 심지어 사무실 문까지 나를 거부했다.
밖에서 잠그려는데 잠기지 않는 것이다!
고것이 나를 일부러 물먹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나의 피해망상일테지만.
심지어 같이 일하는 오빠는 일생각 좀 그만 하라며 하루에도 몇번씩 나를 툭툭 친다.
멍때리면서 내가 잊고 있는 일은 없나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저녁에 집에 가서도 핸드폰으로 메일 온 것이 없나 확인하고 앉았다.
곧 지나면 이러지도 않겠지.
몇 번 덜렁거리다보면 어느 정도 자포자기하고 설렁설렁 해야하는 만큼만 하겠지.
그러나 그때까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주어진 일을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공허감은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모르겠다.
업무가 끝나고 나면 난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허무해진다.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거나 조용히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문득 대학원을 다니면서 단 30분만이라도 자리에 앉아 공부랍시고 책을 뒤적거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제는 저녁 6시까지 일을 하고 그 이후에나 공부를 할 수 있겠지.
아, 일단 2월달에는 개인프로젝트를 수행해야겠구나.
[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추후에 상세히, 구구절절이 썰을 풀기로 한다. 일단은 비밀.ㅋ]
마지막으로, 내 논문에 대하여.
이게 내 석사논문에 대한 마지막 감상이 되길 바라며.
막바지다.
거의 다 왔다.
고지가 머지 않았다.
조금만 수정하면 된다.
어차피 이걸 '불후의 명작'따위로 생각한 적 없고,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불정도로만, 언젠가는 갈아치워버릴 등불정도로만 생각했으니 큰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
쓰는 내내 주제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를 했고,
이제부터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지, 어떤 길로 나가야할지 가닥을 잡았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충분하다.
그걸로 만족한다.
글을 읽을 사람보다는 글을 쓰는 나를 위한 훈련이었으니.
잘했어 미니.
이제 쉬었으니 다시 작업에 착수해볼까?
- 미니^-^☆
아름다운 설연휴를 보내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연휴가 왜 아름다웠냐고?
자고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패턴 무한루프의 생활화랄까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었다.
간간히 동생과 엄마와 고스톱을 치긴 했지만, 연휴 동안 통틀어 2만원을 잃었으니 그건 굳이 '잘 쉬었다'라고 표현하긴 힘들테고.
어찌되었건 잘 놀았다.
그리고 새해 첫 날에는 정하지 못했던 새해 목표를 세웠기에 묵은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도 가뿐하다.
올해는 꾸준히 운동을 할 것이다.
다만, 아직 무슨 운동을 할지 정하지 못한 게 문제다.
예전에 잠시 배웠던 살사를 할까, 아니면 작년에 갑작스런 폐강때문에 아쉽게 그만두어야했던 필라테스를 다시 할까.
살사의 장점이라면, 일단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밌고, 즐겁기도 하다.
'운동'했다기 보다는 그냥 '놀았다'라는 느낌이 강하달까?
춤은 사교적인 활동에 속하기 때문에 어디 가서 응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이 장점들은 또한 단점이 되기도 한다.
동호회활동을 하고 누군가와 함께 해야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비록 히키코모리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나에게 꽤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끔 한다.
한편으로는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관계란 족쇄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언제나 갈등도 있는 법. 말이 돌기도 하고, 꽤나 귀찮은 일이 될수도 있다.
반면 필라테스는 어떠한가.
기본적으로 혼자서 하는 거다.
그래서 집에서 심심할 때 복습할 수도 있다.
살사처럼 동적이진 않지만 에너지 소모가 꽤 많이 되기 때문에 운동이 확실히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원에서 듣는 필라테스 강좌는 살사보다는 비쌀뿐더러 '혼자서' 해야하는 운동이 가진 단점도 안고 있다.
혼자서 하는 것은 지루하다.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살사에 비해 필라테스의 큰 단점이다.
사실 어찌보면 정반대의 극에 있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건데, 똑같은 지점에서 장/단이 갈린다.
혼자하는 것과 함께 하는 것. 둘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조교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아직 감이 잘 잡히지 않아 어리버리하게 닥친 일들만 해치우고 있다.
마치 게임에서 테스크를 완료해야하는 기분이다.
오늘은 심지어 사무실 문까지 나를 거부했다.
밖에서 잠그려는데 잠기지 않는 것이다!
고것이 나를 일부러 물먹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나의 피해망상일테지만.
심지어 같이 일하는 오빠는 일생각 좀 그만 하라며 하루에도 몇번씩 나를 툭툭 친다.
멍때리면서 내가 잊고 있는 일은 없나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저녁에 집에 가서도 핸드폰으로 메일 온 것이 없나 확인하고 앉았다.
곧 지나면 이러지도 않겠지.
몇 번 덜렁거리다보면 어느 정도 자포자기하고 설렁설렁 해야하는 만큼만 하겠지.
그러나 그때까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주어진 일을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공허감은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모르겠다.
업무가 끝나고 나면 난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허무해진다.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거나 조용히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문득 대학원을 다니면서 단 30분만이라도 자리에 앉아 공부랍시고 책을 뒤적거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제는 저녁 6시까지 일을 하고 그 이후에나 공부를 할 수 있겠지.
아, 일단 2월달에는 개인프로젝트를 수행해야겠구나.
[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추후에 상세히, 구구절절이 썰을 풀기로 한다. 일단은 비밀.ㅋ]
마지막으로, 내 논문에 대하여.
이게 내 석사논문에 대한 마지막 감상이 되길 바라며.
막바지다.
거의 다 왔다.
고지가 머지 않았다.
조금만 수정하면 된다.
어차피 이걸 '불후의 명작'따위로 생각한 적 없고,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불정도로만, 언젠가는 갈아치워버릴 등불정도로만 생각했으니 큰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
쓰는 내내 주제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를 했고,
이제부터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지, 어떤 길로 나가야할지 가닥을 잡았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충분하다.
그걸로 만족한다.
글을 읽을 사람보다는 글을 쓰는 나를 위한 훈련이었으니.
잘했어 미니.
이제 쉬었으니 다시 작업에 착수해볼까?
- 미니^-^☆
- 20120117 인수인계 및 차후 논문 계획
- iMPrEsSioN
- 2012/01/17 21:16
- 논문, 오늘하루
오늘 처음으로 인수인계를 받았다.
전임자가 매우 꼼꼼하고 상세하게 메뉴얼을 작성하고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어져 수월한 편이었지만 일종의 불안감이 엄습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앉아서 설명을 듣고 메뉴얼을 읽으면 다 이해가 되지만 직접 일을 하면 또 다르리라.
그래서 후덜덜이다.
덜컥 겁부터 난다.
내가 이걸 어떻게 다 처리하지?
일은 왜 이리 많은거지?
Weiß ich denn überhaupt, worauf ich mich eingelassen habe?
무슨 생각으로 이 일을 맡겠다고 한거지?
으앙앙앙.
아마 일을 시작하고는 한참동안 멍 때리고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일이 익숙해지겠지만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미지수다.
아직은 모든 게 낯설고 무섭다.
그러나 정확히,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지를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냥 막연하게,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공포라고나 할까.
내가 맡아서 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인 것 같고.
내일도 인수인계는 계속 되니 두고볼 일이다.
어쨌든 겁나는 건 어쩔 수 없음.
난 겁쟁이임.
인수인계를 마치고 오랜만에 연구실 자리에 앉아 논문을 다시 봤다.
아니, 다시 봤다기 보다는 서론의 1.2를 삭제하고 새로 쓰려고 앉았는데
도저히 써지지가 않는다. 글이 아닌 한숨만 나온다.
아아...두 달 전의 악몽이 떠오른다.
손 끝에서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던 그 지옥같은 시간들.
아마도 근 한달동안 논문을 쳐다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앉아서 뼈대만 겨우 한페이지 끄적였다.
이제부턴 낮에는 논문에 손을 댈 시간도 전혀 없을텐데...걱정이다.
2월 3일까지는 제본까지 다 해서 제출해야하는데, 그 안에 수정을 다 하고 초록이랑 참고문헌까지 어느 세월에 다 작성한단 말이냐. 에효.
이럴때면 주위에서 진작 해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게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막판에 몰아쳐서 하는 성격임을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걸 어쩐단 말이냐.
일단 계획은 짜기 시작했다.
설연휴 전까지는 서론 부분을 뜯어고치고, 연휴 동안에는 본론에서 지적된 부분들을 수정 및 보완할 계획이다.
그러면 일차적으로 지도교수한테 검토를 받을 상황은 되겠지.
그리고 마지막 주에 국문초록과 독문초록을 작성하고 제본 맡기기 이틀 전에 참고문헌목록 작성.
이게 내 계획이다.
2월 3일이 금요일이니 그 주 월요일날 제본을 맡기면 4일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빠듯하게 일정을 짜놓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이 일정대로 소화해낼 수 있겠지?
해야지.
- 미니 ^-^☆
- 20111228 여유로운 나날들 + 논문 후기
- iMPrEsSioN
- 2011/12/29 01:36
- 논문, 오늘하루
논문 발표가 끝나고 나니 모든 사람들이 말했듯이,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쳐다보고 싶지 않다-가 맞겠다.
요즘은 그냥 뜨개질이나 하고, 첨삭을 하며 지내고 있다.
저녁은 학교에서 먹기 싫어 계속 나가고 있고.
오늘만 해도 ㅅㅈ언니 집에 놀러가 수다를 떨고 한시간정도 자고 왔다.
편안한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행복하다.
어제는 머리를 했다.
정신없이 붕~뜨는 머리를 하고 싶었는데, 내 머리카락이 가늘고 힘이 없어 그렇게는 안된다.
그건 좀 안타깝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오는 이서우작가처럼 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포스있게는 안나온 것 같다.
참고사진:
그리고 연극을 한편 봤다.
"버자이너 모노로그".
한국에서 공연한 지 10주년이라고 하더라.
사실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계속 보고 싶던 공연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게 기회도 없었고, 당시에는 연극에 투자할 돈이 없어 포기했었다.
그래서 어제 보러 갔을 때는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였다.
게다가 (위 사진에도 찬조출연해주신) 김여진배우님께서 나오신다길래 나의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공연평은 며칠이 지난 후에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연극이나 영화라는 게 보고 난 직후에는 아무 말을 할 수 없고
정말 중요하고 인상깊었던 건 며칠 후에나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냥 한마디로 줄이자면: 살면서 한번쯤은 볼만한 연극. 특히 연인과 함께라면 강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오랜만인 것 같다.
논문때문에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그건 반만 진실이기에 할 수 없다.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논문을 못 쓰던 이유과 같다.
글을 쓰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냥 내 생각을 적어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하기에는 '텍스트'를 생산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텍스트는 그 자체의 고유한 논리가 있다.
그 논리를 따라가야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타인에 전달될 수 있다.
난 그 훈련이 부족했/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두려웠다.
지금은 두렵지 않냐고?
지금은 잘 쓰고 있냐고?
둘 다 아니다.
그래도 논문을 쓰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글쓰기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는 빛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지도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석사논문이 앞으로 내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석사논문은 그런 긴 호흡의 글을 써보는 훈련이자 그 작가나 주제에 대해 정리를 해보는 수준에만 머물러도 된다.
사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논문을 완전히 다 쓰고 나면 어디가서 그걸 썼다고 말하고 다니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좋은 주제도 아니고, 특별한 테제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오해하진 말길, 내 논문에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썼던 것들 중에 가장 정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급을 꺼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은 바로 내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이랴.
어찌되었건, 기쁘다.
글을 쓴다는 게 이제 더이상 그렇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조금이나마 컴플렉스를 극복하게 되어서.
앞으로는 블로그에 글을 좀 더 써볼까 한다.
시간도 생기고, 마음에 여유도 생겼는데 뭘.
- 미니 ^-^☆
아니, 지금으로서는 쳐다보고 싶지 않다-가 맞겠다.
요즘은 그냥 뜨개질이나 하고, 첨삭을 하며 지내고 있다.
저녁은 학교에서 먹기 싫어 계속 나가고 있고.
오늘만 해도 ㅅㅈ언니 집에 놀러가 수다를 떨고 한시간정도 자고 왔다.
편안한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행복하다.
어제는 머리를 했다.
정신없이 붕~뜨는 머리를 하고 싶었는데, 내 머리카락이 가늘고 힘이 없어 그렇게는 안된다.
그건 좀 안타깝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오는 이서우작가처럼 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포스있게는 안나온 것 같다.
참고사진:
그리고 연극을 한편 봤다.
"버자이너 모노로그".
한국에서 공연한 지 10주년이라고 하더라.
사실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계속 보고 싶던 공연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게 기회도 없었고, 당시에는 연극에 투자할 돈이 없어 포기했었다.
그래서 어제 보러 갔을 때는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였다.
게다가 (위 사진에도 찬조출연해주신) 김여진배우님께서 나오신다길래 나의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공연평은 며칠이 지난 후에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연극이나 영화라는 게 보고 난 직후에는 아무 말을 할 수 없고
정말 중요하고 인상깊었던 건 며칠 후에나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냥 한마디로 줄이자면: 살면서 한번쯤은 볼만한 연극. 특히 연인과 함께라면 강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오랜만인 것 같다.
논문때문에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그건 반만 진실이기에 할 수 없다.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논문을 못 쓰던 이유과 같다.
글을 쓰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냥 내 생각을 적어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하기에는 '텍스트'를 생산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텍스트는 그 자체의 고유한 논리가 있다.
그 논리를 따라가야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타인에 전달될 수 있다.
난 그 훈련이 부족했/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두려웠다.
지금은 두렵지 않냐고?
지금은 잘 쓰고 있냐고?
둘 다 아니다.
그래도 논문을 쓰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글쓰기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는 빛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지도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석사논문이 앞으로 내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석사논문은 그런 긴 호흡의 글을 써보는 훈련이자 그 작가나 주제에 대해 정리를 해보는 수준에만 머물러도 된다.
사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논문을 완전히 다 쓰고 나면 어디가서 그걸 썼다고 말하고 다니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좋은 주제도 아니고, 특별한 테제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오해하진 말길, 내 논문에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썼던 것들 중에 가장 정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급을 꺼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은 바로 내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이랴.
어찌되었건, 기쁘다.
글을 쓴다는 게 이제 더이상 그렇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조금이나마 컴플렉스를 극복하게 되어서.
앞으로는 블로그에 글을 좀 더 써볼까 한다.
시간도 생기고, 마음에 여유도 생겼는데 뭘.
- 미니 ^-^☆
- 오늘의 테마 - 논문, 공부, 나.
- eXprEsSioN
- 2011/08/20 14:48
- 논문, 오늘의 테마, 잡설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쓰기를 시작했다. 참고문헌들을 읽으면서 갈팡질팡하다가 머리 속으로 한참을 구상하고 나름 윤곽을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2주간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에서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또 지금까지 어찌나 나이브하게 주제에 접근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일주일동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한참을 방황했다. 선생님께서는 대략적인 가이드라인만으로는 내가 절대로 논문을 못 쓸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셨는지 이번주에는 과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내주셨다. 덕분에 난 하루에 Task를 하나씩 해결해야하는 빡센 스케쥴을 소화해내려 하루종일 좌불안석이다. 어제는 그래도 나름 무언가를 해낸 것 같은데 가장 쉬운 것부터 처리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오늘의 과제를 시작하기 전 이렇게 노닥거리는 내 모습이 이상하지도 않다.
걱정이 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려는 말이 뭘까? 내 주장이 타당한가? 내가 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만큼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가?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면 지금 정리하고 있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토해낼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졌는가? 아니, 그보다 내가 그동안 그 능력을 충분히 길렀는가? 너무 부족하진 않은가? 발표장에 들어서서 돌처럼 굳어버리진 않을까? 내 발표를 들은 사람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진 않을까? 건설적인 비판마저 개인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삐뚤어진 마음상태는 어떻게해야 치료가 될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덕분에 눈을 깜빡거리는 틱현상이 컴백해주셨고, 친구들의 연락에 일일이 답해줄 정신적 여력도 고갈되었다. 그러나 만나자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과의 약속을 수차례 미룬 결과, 어제와 내일 다시 한번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게 생겼다. [물론, 예전에 과외를 뛰면서 수업을 들었던 때, 과외시간에 늦을까봐 강변북로를 120km 밟던 그때만큼 '살인적'이진 않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충분히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압박적이다.]
그 와중에 지인이 정신적으로 쇠약한 상태임을 뒤늦게 깨닫는다던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눈치 못채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느껴지는 자괴감은 스트레스를 배가시킬따름이다. 죽겠다. 그래서인지, 술만 술술 들어가고 주량은 점차 늘어가는 것 같다. 체력은 뒷받쳐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따위, 개나 주라지. 지금은 그런 것따위를 운운할 정도의 정신줄도 잡을 수 없다.
게다가 요즘 계속 자기 전에 약을 먹는 걸 깜빡한다. 그래서일까. 점점 더 예민해진다. 촉을 세운다. 그러다가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다. 대화에 귀를 기울이긴 하지만 능동적으로 참여를 할만한 기운이 없다. 이럴 때 새삼 내가 내성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스트레스 받을 때 밖에 나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보다 방에 콕 박혀 컴퓨터 게임을 주구장창하는 게 훨씬 더 좋다. 짜증이 날 때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짜증이 날 때는 나에게서 발산되는 짜증에너지를 마구마구 퍼뜨릴 상대가 필요하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밖으로 밀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다 때려치우지 왜 여지껏 여기 앉아있느냐고 묻는다면...휴우. 그 질문은 지난 일주일동안 나 자신에게 몇백번이고 물었드랬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어디 취직을 하거나 다른 길을 찾으면 안될 것도 없는데 나는 스스로를 이런 지경에 몰고가는가....
결론은, 그래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세상의 이치. 세상이 돌아가게 만드는 톱니바퀴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좋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사람들의 공통점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내 주변 환경에 많이 휘둘렸다. 좋게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이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내 옆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고 살아가는지를 엿보며 그것을 따라하면서 살아갔다. 어떤 사람은 강렬한 빨강색을, 어떤 사람은 푸르른 녹색을 띠고 내면에서 빛을 발산하며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데 나는 스스로를 무색무취로 느꼈다. 취향이나 선호도 불분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A가 좋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상황에 처하면 A보다는 B를 선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불만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리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 말이 맞고, 반대편에 있는 저 사람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 말이 맞으니까. 두 개의 대립적인 주장을 듣고 그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친구들을 보면 언제나 감탄을 하면서 부러웠다. 그래, 저 친구들은 확고한 중심이 있으니까 저게 가능할꺼야-라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나의 무능력을 탓했다. 난 멍청하니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못하는 바보니까 이리저리 휘둘리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질 못하는거야-라고.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게 좋았다. 그저 문제 하나를 더 맞춰 점수를 1점이나마 올리려는 의도에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정말 궁금했다. 모든 것이. 어렸을 적 미친듯이 파고들었던 추리소설들에 등장하는 탐정, 특히 나의 우상이었던 셜록 홈즈처럼 박학다식하면 무언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대학와서도 내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목표했던만큼 많이 하진 못했지만, 나에게 공부란 어차피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이론들을 꿰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인간들, 정말이지 혜안을 지닌, 박학다식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어떤 책에서 읽지 못할 지식들을 알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 '공부'의 진정한 의미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이해하는 것,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 그런 것들. 아직도 학문의 차원에서 난 많이 모자르다. 나도 안다. 그러나 하루하루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사회적 사안에 대하여 무엇이 옳은지, 내가 그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고 싶은지 파악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스스로에 대하여 대견스럽다.
지금은, 그러니까 논문을 쓰는 지금은 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종합해서 사람들에게 내놓을 차례이다. 내가 느끼는 감상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해서 사람들을 설득시킬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라던가, 딱히 다른 걸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손에서 놓는다면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뭐가 뭔지 감도 못잡고 어리버리하게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고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이 시간은 (누가 봤을 때 엄살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고통은 주관적인 거니까) 내가 성장하는데 치루어야할 대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것만 견디면 난 조금 더 커져있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인간에 가까워지겠지.
-미니..^-^☆
걱정이 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려는 말이 뭘까? 내 주장이 타당한가? 내가 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만큼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가?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면 지금 정리하고 있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토해낼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졌는가? 아니, 그보다 내가 그동안 그 능력을 충분히 길렀는가? 너무 부족하진 않은가? 발표장에 들어서서 돌처럼 굳어버리진 않을까? 내 발표를 들은 사람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진 않을까? 건설적인 비판마저 개인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삐뚤어진 마음상태는 어떻게해야 치료가 될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덕분에 눈을 깜빡거리는 틱현상이 컴백해주셨고, 친구들의 연락에 일일이 답해줄 정신적 여력도 고갈되었다. 그러나 만나자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과의 약속을 수차례 미룬 결과, 어제와 내일 다시 한번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게 생겼다. [물론, 예전에 과외를 뛰면서 수업을 들었던 때, 과외시간에 늦을까봐 강변북로를 120km 밟던 그때만큼 '살인적'이진 않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충분히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압박적이다.]
그 와중에 지인이 정신적으로 쇠약한 상태임을 뒤늦게 깨닫는다던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눈치 못채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느껴지는 자괴감은 스트레스를 배가시킬따름이다. 죽겠다. 그래서인지, 술만 술술 들어가고 주량은 점차 늘어가는 것 같다. 체력은 뒷받쳐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따위, 개나 주라지. 지금은 그런 것따위를 운운할 정도의 정신줄도 잡을 수 없다.
게다가 요즘 계속 자기 전에 약을 먹는 걸 깜빡한다. 그래서일까. 점점 더 예민해진다. 촉을 세운다. 그러다가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다. 대화에 귀를 기울이긴 하지만 능동적으로 참여를 할만한 기운이 없다. 이럴 때 새삼 내가 내성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스트레스 받을 때 밖에 나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보다 방에 콕 박혀 컴퓨터 게임을 주구장창하는 게 훨씬 더 좋다. 짜증이 날 때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짜증이 날 때는 나에게서 발산되는 짜증에너지를 마구마구 퍼뜨릴 상대가 필요하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밖으로 밀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다 때려치우지 왜 여지껏 여기 앉아있느냐고 묻는다면...휴우. 그 질문은 지난 일주일동안 나 자신에게 몇백번이고 물었드랬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어디 취직을 하거나 다른 길을 찾으면 안될 것도 없는데 나는 스스로를 이런 지경에 몰고가는가....
결론은, 그래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세상의 이치. 세상이 돌아가게 만드는 톱니바퀴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좋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사람들의 공통점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내 주변 환경에 많이 휘둘렸다. 좋게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이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내 옆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고 살아가는지를 엿보며 그것을 따라하면서 살아갔다. 어떤 사람은 강렬한 빨강색을, 어떤 사람은 푸르른 녹색을 띠고 내면에서 빛을 발산하며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데 나는 스스로를 무색무취로 느꼈다. 취향이나 선호도 불분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A가 좋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상황에 처하면 A보다는 B를 선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불만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리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 말이 맞고, 반대편에 있는 저 사람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 말이 맞으니까. 두 개의 대립적인 주장을 듣고 그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친구들을 보면 언제나 감탄을 하면서 부러웠다. 그래, 저 친구들은 확고한 중심이 있으니까 저게 가능할꺼야-라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나의 무능력을 탓했다. 난 멍청하니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못하는 바보니까 이리저리 휘둘리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질 못하는거야-라고.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게 좋았다. 그저 문제 하나를 더 맞춰 점수를 1점이나마 올리려는 의도에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정말 궁금했다. 모든 것이. 어렸을 적 미친듯이 파고들었던 추리소설들에 등장하는 탐정, 특히 나의 우상이었던 셜록 홈즈처럼 박학다식하면 무언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대학와서도 내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목표했던만큼 많이 하진 못했지만, 나에게 공부란 어차피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이론들을 꿰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인간들, 정말이지 혜안을 지닌, 박학다식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어떤 책에서 읽지 못할 지식들을 알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 '공부'의 진정한 의미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이해하는 것,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 그런 것들. 아직도 학문의 차원에서 난 많이 모자르다. 나도 안다. 그러나 하루하루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사회적 사안에 대하여 무엇이 옳은지, 내가 그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고 싶은지 파악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스스로에 대하여 대견스럽다.
지금은, 그러니까 논문을 쓰는 지금은 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종합해서 사람들에게 내놓을 차례이다. 내가 느끼는 감상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해서 사람들을 설득시킬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라던가, 딱히 다른 걸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손에서 놓는다면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뭐가 뭔지 감도 못잡고 어리버리하게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고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이 시간은 (누가 봤을 때 엄살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고통은 주관적인 거니까) 내가 성장하는데 치루어야할 대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것만 견디면 난 조금 더 커져있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인간에 가까워지겠지.
-미니..^-^☆
- 오늘의 테마: 문학과 카프카 (&...my 논문)
- eXprEsSioN
- 2010/10/25 07:21
- Kafka, 논문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해봤다. 왜 카프카인가?
카프카는 왜 아직도 연구되고 있고, 왜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가?
카프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어디에 있는가?
대답을 바로 내리기 힘든 질문들이다.
일단 "변신"이라는 작품을 예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난, "변신"의 포커스가 변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변신"의 주요테마는 가족이다. 좀 더 넓게 보자면, 그레고어의 현실인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하는 것은 매우 기발한 착상이다.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해서 눈 앞에 막을 씌운 것처럼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어의 모습이 너무나 자세히 묘사되어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는 단지 배경일 뿐이다. 만약 변신 자체가 주요테마였다면, 변신 전이나 변신 과정, 혹은 변신에 대한 원인은 왜 언급되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한 보충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 배경을 깔고 보면, 그레고어가 인식했던 가족상과 실제 가족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이 보인다.
그레고어의 가족은 그레고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가난하지도 않았고, 그가 '전해들은 것처럼' 화목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사실 그레고어는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나 많아서 가족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를 전혀 모른다.
단지 머리 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내고, 그 안에 자신이 없는 정당성을 찾고자 비인간적으로 일을 한다.
혹자에 따르면, 자신의 희생으로 인하여 가족이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에 어깨를 으쓱한다고 볼 수도 있다. (몇 달 전에 논문에서 읽은 부분인데 정확한 논문명이 생각나지 않는다.)
변신을 통해서 그는 집에 있을 충분한 이유가 생기고, 자신 없이도 충분히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족을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변신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는 있다. (그래도 변신 자체가 주요테마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를 일반화해서 정리해보자면, '(갑충으로의) 변신'이라는 환상적인 배경을 통해 매우 현실적인('가족'이라는 개념의 허구성)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문학 자체가 일종의 환상성을 통해 현실을 드러낸다.
그것은 비유적인 형태를 띨 수도 있고, 괴테의 경우처럼 환상적인 면들을 너무나 정교하게 삽입하여 전혀 알아볼 수 없게, 혹은 거슬리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사실주의 문학을 들 수 있겠지만, 문학 자체가 현실을 그대로 보고하기보다는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제아무리 사실적인 묘사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문학은 환상성, 혹은 허구를 0.1%도 함유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카프카는 탁월하다.
그는 문학의 본질인 환상성을 너무나 그로테스크하게 드러냄으로써 독자를 현혹시킨다.
그가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한 그의 통찰력, 내지는 그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Das Reale im Absurdem. - Am Beispiel v. ~
그럴듯한 논문이 될까 모르겠다. 일단 공부나 해야지.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