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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2  

 


"그냥 기분이 꿀꿀해서 백화점갔어. 세일을 하길래 그냥 삼십만원 긁고왔더니 좀 낫네."

-미친 년.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누구는 없는 시간 내서 생활비를 버느라 땀 뻘뻘흘리고 있는 마당에 그렇게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건가.

"야..그래도 좋겠다. 꿀꿀하다고 백화점 가서 내 한달치 월세를 지불하고 오다니."

"너랑 나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그리구 우리 집이, 그래, 명예도 있고 지위도 있지만, 솔직히 돈이 있는 건 아니지. 주위에 돈 펑펑쓰고 다니는 애들 보면 얼마나 부럽다고."

-저게 돌았나. 지 손으로 돈 한푼 벌어본적 없는 주제에 한달 생활비 몇십만원으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나에게 저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그녀는 계속해서 조잘거려댔다.

"그리구 난 돈 없는 사람들 싫어. 얼마 안되는 돈 갖고 치사하게 일일이 따지기나 하구. 넌 그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랬다. 처음에는 돈으로 치사하게 구는 자신이 궁상스러워서 그러지 않으려 정말 노력했다.
집이야 어떻든, 월세가 밀리고 밀려 이사할 때 보증금이 깎이더라도 남들 앞에서는 없는 티 내지 않으려고 친구들 모임에서 가장 먼저 지갑을 꺼내든 J였다. 그래서 나중에 속마음을 터놓을 정도로 친해지고 나서야 실상을 얘기하면 "정말?"이라고 눈을 똥그랗게 뜨는 친구도 있었고, "부르주아의 탈을 쓴 프롤레타리아"라는 별명까지 붙히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독립해서 몇년을 살다보니 밖에서 돈을 펑펑 쓰고 와 텅 빈 지갑을 노려보며 속으로 '미친 년, 망할 것'이라고 자학하는 나날들이 늘었던 것이다.

"그래, 돈 없는 나랑 놀아줘서 참 고맙다야."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닌데 왜그래. 소심하게. 난 너밖에 없잖아."

-이젠 그 소리도 질린다야.
라고 생각하며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렸다. 이제는 일어날 타이밍만 잘 잡으면 된다. 무슨 핑계를 대야 저 아이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면서 빨리 자리를 뜰 수 있는지 머리를 굴렸다.

"나..아무래도 가야할 것 같은데"

"왜? 오늘 좀 한가하다며?"

"뭐 책이나 좀 읽으려고"

"매일 읽는 책, 오늘 나 만났으니까 하루 정도 쉬면 안되? 나 정말 오랜만에 온거잖아. 우리 이렇게 수다떠는 거 얼마만이니?"

-실패다.

"그리고 넌 시간도 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애가 너무 그러지 마라. 아침마다 칼같이 출근해야하는 직장인도 아니고, 공부 좀 소홀히 했다고 윗상사가 쪼는 것도 아니고, 편하게 살면서 왜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J가 굳이 취직을 하지 않고 대학원에 간 것도 아마 직장인으로서 사는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때문이었을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마다 정시에 출근을 하고, 나의 인생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해야하는 삶. 머리 벗겨진 아저씨들이 바글거리면서 나를 괴롭히는 곳. J에게는 이것이 '직장'이라는 단어가 가진 함의였다.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살기 싫어서 대학원 진학을 했건만,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 괜히 눈치 보이는 교수들, 그리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생활. 그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저 아이와 같이 반응을 보인다. 네가 선택한 길 아니더냐, 누가 취직하지 말랬냐, 그래도 주위에 비교하면 넌 인간답게 사는 거다, 늦잠을 자는 게 얼마나 소중한 줄 아느냐, 하루종일 책만 보고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이냐 등등 J에게는 너무나 버겨운 삶이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 툭툭 내뱉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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