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X'에 해당되는 글 20

  1. 2012/04/23 건축학개론
  2. 2012/03/30 클로저 Closer
  3. 2012/01/08 요시나가 후미, "사랑해야하는 딸들"
  4. 2012/01/04 버자이너 모놀로그 Vagina Monologue
  5. 2011/06/11 Yu Aida, "건슬링거 걸 Gunslinger Girl" (3)
  6. 2011/05/16 써니 - 유쾌한 서브텍스트 읽기
  7. 2010/10/31 X=즐거운 나의 집(드라마 감상)

건축학개론

지난주 일요일날 건축학개론을 봤다.

워낙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했던지라, 궁금해서 보고싶었다.

특히 그 영화를 보고 며칠동안 멍때리던 남성분들을 보면서, '대체 어떻길래'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컸으리라.

 

대학동기이자 베프인 깽양과 함께 일요일 저녁에 건축학개론을 봤다.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옆에 친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나는 허한 마음에 다리가 풀려 영화관을 채우는 "기억의 습작"에 빠져있었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나와 조용히 우리 대학교 주변 맥주집에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 맥주가 나올 때까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맥주를 한모금씩 들이킨 후에 말을 꺼냈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말들이 이미 나왔기 때문에 길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성의 시각에서 서술된 멜로이자, 한국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멜로물의 흥행, 80년대가 아닌 90년대를 이야기하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등등 건축학개론에 뒤따르는 많은 수식어들이 있다. 다 동의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의 분석이 아니라 단순한 감상일뿐이다.

영화에는 20살의 찌질함, 내지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그냥 내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때.

'사귄다'라는 규정이 없어도 그냥 둘이 마음 맞아 함께 할 수 있던 그 때.

상대의 사소한 몸짓, 말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던 그 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남았다.

왜 그럴 수 없는가.

나이를 먹으면 이미 사랑이 코드화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코드대로 움직여야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첫눈이 오면 그 때 만나자는 말이 사랑고백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남자주인공의 순수함은 나이가 먹으면 통용되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라면 하나 먹고 갈래요?"라는 말이 말그대로 라면 하나 먹고 가라는 말이 아님을 깨닫기 때문이다.

사랑은, 연애는 코드화 되어 20대 후반이 되면 그 코드 속에서 움직이고 살아가게 된다.

소위 말하는 '밀당'이라는 것도 그 일환이 아니던가.

 

또 하나의 감상: 풋풋한 첫사랑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같은 것들이 있는가보다.

예를 들어 좋은 노래 한 곡을 서로 추천해가며 같이 듣는 것.

상대방이 좋다는 노래를 외우다시피 들으며 그 사람의 감성을 공유한다는 느낌에 젖을 수 있었다.

이뿐만일까.

잠에 든 상대방에게 몰래 입을 맞추는 것.

그 이상을 원하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그 행위 자체로 짜릿했던 그 때....

 

 

대학시절 자주 다녔던 맥주집에서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추억거리가 잔뜩했다.

내가 앉았던 옆테이블은 그 사람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던 곳이고,

그 옆에는 그 사람과 멀어진 후 여러명이서 단체로 앉아 새우깡을 먹던 곳이고,

한 번은 거기서 싸우고 나와 길거리에서 서로가 걱정되어 상대방 집 앞에서 서로를 기다리다가 길이 엇갈려 몇시간을 길바닥에서 서성거렸던 적도 있고..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의 공감대를 시기적절하게 찌른 영화, 건축학개론.

보는 이들의 머리 속에 "기억의 습작"을 각인시켰으리라.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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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 Closer

오늘 학교에서 하는 "클로저" 공연을 봤다.

영화로도 여러번 봤고, 연극으로 역시 2005년 국내 초연과 지난 번 엄기준-문근영 캐스팅으로도 봤었다.

다양한 버전을 접한만큼 내용 면에서는 거의 외우다시피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을 보면서는 느낌이 달랐다.


일단, 이번 공연에 대해 간단히 말해볼까?

가장 아쉬운 것은 학내 공연의 한계라 할 수 있는 '무대'와 '소품'.

좁디 좁은 무대, 그리고 한정된 소품이라는 한계가 참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교내 연극을 몇 년 간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인만큼, 그 점은 쓰라린 가슴 부여잡고 넘어가기로 한다.


작품 해석에 대해서는...으음...내가 원작을 직접 다 읽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을 관람했기 때문에 이를 종합하여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점, 양해바란다.

지금까지 "클로저"에 대해 수집한 (내용적인 면에서의) 정보에 의하면, 이번 공연은 원작에 가장 충실했던 것 같다. 

마지막에 앨리스가 죽는 것도 그렇고, 중간에 앨리스와 안나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그렇고,

영화에는 없는 장면들이지만 연극버전에서는 이미 봤던 내용들이었으니, 원작에는 있는 내용이라 추측된다.

그래서인지 상연시간이 정말 길었다. 3시간...

원작의 향기를 고스란히 살렸다는 점에서는 정말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원작을 그대로 살리면 문제가 되는 점도 있으니...

너무 많은 내용을 하나의 작품에 구겨넣은듯한 인상?

깔끔하게 가지치기를 거치지 않은 자연상태의 나무를 보는 모습?

물론 그 역시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연출의 해석이 더 가미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듯 싶다.

작품을 자신의 해석에 맞게 재단하여 무대 위에 올리는 연출/각색의 재미, 그리고 관객으로서 이를 관람하고 그 해석을 받아들이거나 그 해석과 싸워보는 재미도 있지 않은가. 너무 날 것의 상태인 원작을 상연하는 것은 연극 올리는 사람의 관점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해 아쉬움을 짙게 남긴다.

그 점이 가장 아쉬웠다.


배우들 연기는, 글쎄, 전문배우들도 아닌데 이렇게 감히 평가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댄의 연기가 가장 압권이었다.

찌질한 모습에서 시작하여 뻔뻔한 모습까지 서로 너무나 다른 모습들을 보이는 댄은 분명 배우로서 탐낼만한 배역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그만큼 해석하고 연기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댄은 멋졌다.

감정의 흐름이 지나치게 끊겨서 이입이 안될 정도도 아니었거니와 자칫 과할 수 있는 감정의 분출 장면에서도 충분히 이입하고 볼 수 있었다.

여자배우들 역시 그러했다. 아쉬웠던 것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앨리스가 댄에 묻혀서 잘 살아나지 않았다는 정도?

개인적으로 가장 불만이었던 것은 래리였다.

래리는 4명 중에서 가장 속물적이고 솔직한 인물이기에 '날 것'의  거친 느낌을 전달해야하는데,

래리 역을 맡은 배우는 발성이 너무 깔끔하달까...배우 김태우를 연상시키는 연기가 배역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작위적인 제스처나 말투 역시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는 래리 연기의 매력을 반감시키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지난 날들의 "클로저" 감상과 이번 "클로저" 감상은 사뭇 다르다.

이전에는 앨리스를 중심으로, 그녀의 대사들에 감정을 이입하여 봤었다.

예를 들자면:

ALICE: I don't love you anymore.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DAN: Since when? (언제부터?)

ALICE: Now. Just now. I don't want to lie. Can't tell the truth, so it's over.

          (지금. 그냥 지금.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진실을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니깐 끝난거야.)

DAN: It doesn't matter. I love you. None of it matters.

       (상관없어. 사랑해. 아무 것도 상관없어.)

ALICE: Too late. I don't love you anymore. Goodbye.

          (너무 늦었어. 난 널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 안녕.) 
          ...

          I would have loved you... forever. Now, please go.

          (난 널 사랑했었을꺼야...아마 영원히. 자, 이제 가.)

 

...

 

DAN: I love you! (사랑해!)

ALICE: Where?! (어디?!)

DAN: What?! (뭐?!)

ALICE: Show me! Where is this love? (보여줘! 사랑이 어딨어?)

          I... I can't see it, I can't touch it. (난..난 보이지 않아. 만질 수도 없어.)

          I can't feel it. I can hear it. (느낄 수 없어. 들리지도 않아.)

          I can hear some words, but I can't do anything with your easy words.

          (단어 몇개는 들리지만, 난 네가 말하는 그게 와닿지 않아.)

          Whatever you say is too late. (네가 무슨 말을 하던, 이미 늦었어.)

DAN: Please, don't do this! (제발, 이러지 마!)

ALICE: Done. (끝났어.)

....

ALICE: You're a piece of shit. (넌 개새끼야.)

DAN: Deception is brutal. (기만은 잔인한 거지.)

        I'm not pretending otherwise. (부인하지 않아.)

ALICE: How? How does it work?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How do you do this to someone? (어떻게 사람한테 이럴 수 있니?)

Dan tries to think of an excuse. (댄은 변명을 떠올리려 애를 쓴다.)

ALICE: Not good enough. (충분하지 않아.)

DAN: I fell in love with her, Alice. (난 그녀와 사랑에 빠졌어, 앨리스.)

ALICE: Oh, as if you had no choice? (선택할 수 없었다는 듯이 말하네?)

         There's a moment, there's always a moment,

         (순간이 있어, 항상 어느 순간이 있다고,)

         "I can do this, I can give in to this, or I can resist it."

         ("난 할 수 있어. 여기에 푹 빠지던지, 아니면 이것에 저항하던지.")

         And I don't know when your moment was,

         (너한텐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but I bet you there was one. I'm gone.

         (내가 장담컨데, 있긴했어. 난 갈꺼야.)


[위 번역은 내 맘대로]


이런 주옥같은 대사들은 첫 대면했을 당시 피폐했던 내 마음에 와닿았다.

어찌 심금이 울리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런데 이번 공연에는 원작에 가까웠기 때문일까,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조망이 가능했다.

제목 'closer'의 의미를 깨달았다랄까.

즉,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closer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까워지지 못하는 이야기를 사실을 (이제서야) 절감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매체'를 거칠 수밖에 없다.

매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신문이나 뉴스를 떠올리겠지만, 사실 '매체'는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

즉, 무언가를 '매개'하면 그것은 확장된 의미에서의 '매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예로는 언론매체를 제외하고서라도 영화, 인터넷, 문자, 언어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클로저"에는 이런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보따리보따리 풀어나가고 있으며 그 안에는 '진실'과 '거짓'이 녹아들어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주며 일종의 서스펜스를 구성한다.

매체를 거쳐 소통할 수밖에 없는, 다시 말해 교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매체를 통해 가까워지고자 한다.

이러한 매체들이 '진실'을 이야기한다 믿으며.

우리는 매체가 담고 있는 진실이 사람들을 가까워지게 만든다고, 소통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체는 과연 진실을 말하는가?

우리는 매체를 통해 상대방의 진실을 알 수 있을까?

두번째로는, 진실은 상대방과 소통이나 교류를 할 수 있게 해주는가?


하나씩 꼽아볼까?

첫째, 책. (책 또한 매체로 볼 수 있다.)

댄은 앨리스의 인생을 바탕으로 책을 낸다.

그러나 우리가 작품 후반부에 알 수 있듯이, 앨리스라는 이름부터가 거짓이다.

그녀의 생애 또한 그녀가 지어낸 거짓일지도 모른다.

이 사실은 그녀의 대사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안나의 사진 전시회장에서 래리가 책의 내용이 사실이냐고 묻자, 앨리스는 "부분적으로"라고 답한다.

이에 이어 래리가 '그럼 무엇이 빠졌느냐'라고 묻자, 그녀는 "the truth"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이야기가 진실이라 믿었던 댄이 책을 쓰지만, 그 책의 내용에서는 진실이 결여되어 있다.

즉, 책이라는 매체에 실린 이야기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있다는 대목이다.


둘째, 인터넷.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댄과 래리가 채팅을 하는 장면을 살펴보자.

래리는 댄이 여자임을 의심하지 않고 채팅을 한다.

그러나 래리는 바보같이 여자로 가장한 댄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우리(관객)는 이 장면을 보고 웃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거짓에 속는 래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누구나 인터넷상으로는 그렇게 속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자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솔직히, 우리가 인터넷 상으로 누군가과 소통할 때, 그 사람의 진실된 일면을 보고 있다고 믿지만, 이를 어찌 담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인터넷 상의 상대방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드러내는 닉네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역시 충분히 거짓일 수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유토피아적 형태'인 인터넷이야말로 허구가 판을 치는 공간에 불과한 곳이다.

그러니 '진실을 매개하는' 매체로 기능할 수 없다.

작품을 보는 관객들 역시 이를 자각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사진.

사진에 대해서는 앨리스가 단호하게 말한다.

전시회장에서 래리가 사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녀는 사진 속의 사람들은 외롭고 슬픈데, 그 모습을 사진을 찍어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그리고 그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외롭고 슬픈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이 아름답다고, 이건 예술이라고 믿고 기뻐한다고. 그래서 사진들이 죄다 'bullshit'이라고.

대부분 관객들은 그 말에 호응할 것이다. 앨리스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나가 찍은 '낯선 사람'들의 모습은 고독한 개인들이다. 어디서나 '낯선', 누구에게나 '낯선', 우리가 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거치고 나면 예술이 줄 수 있는 일종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들이 처한 현실은 암울하지만, 사진을 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예술'인 것이다.

이쯤되면 사진 또한 거짓을 전달하는 매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클로저"에는 이렇게 가시적인 매체들뿐만 아니라 '언어', '섹스', 그리고 더 나아가 '감정'의 거짓을 폭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앞서 인용한 대사 중, '사랑'을 보여달라는 앨리스의 말.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상대방과 나눌 수 있는 가장 깊은 형태의 교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을 담지하는 매체는 다름아닌 언어와 섹스이다.

하지만 앨리스는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는 있지만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역설함으로써 언어가 매개하지 못하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이 대사는 감정의 진실성까지 의문시하게 만든다.

그래, 사랑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댄은 앨리스를 정말로 사랑하는가? 그 사랑이란 어디에 있는가? 표현될 수 있는가? 표현될 수 없다면,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등등.

섹스 역시 두 사람을 가장 가깝게 만드는 매개체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섹스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와 잤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밝히는 것은 상대방에게 얼마나 진실된지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특히 애인에게 바람핀 사실을 고백할 때 정점을 찍는다.

낭만적 사랑을 신봉하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이 제3자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에는 힘들지만 결국에는 사랑의 힘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현실'이다.

사랑은 마음의 문제이고 섹스는 몸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섹스를 했다는 사실이 '사랑'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진실'이다.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잤다고 해도, 그것이 질투가 나고 화가 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진실되게 사실을 고해하면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논리로 룸살롱에 가는 남자들이 아가씨들 허벅지를 쓰다듬고 부비부비하고 와도 아내들이 눈을 감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경우 흔히 듣지 않는가."그 사람과는 잤을 뿐이야. 마음을 준 게 아냐. 난 널 사랑해. 그 사람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 없어." 혹은 친구들의 '순수한' 원나잇 경험담들.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전혀 무관한, 인간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성욕의 발산'.

그러나 클로저는 사랑과 섹스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섹스를 단순히 '사랑의 표현'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섹스의 중요성은 역으로 '사랑'이라는 '숭고한' 감정을 회의하게 만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한다. 그리고 나는 이를 용서할 수 없다.

댄이 그러하다. 래리와 '의미없는' 섹스를 하고 온 안나는 이를 솔직히 고백하지만, 댄은 그녀를 볼 때마다 래리가 보인다. 이는 사랑으로 극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 사랑', 섹스를 뛰어넘는 절대적 가치를 가진 사랑은 존재하는가?

"클로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이입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우리가 자연스레 신봉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신화를 깨부순다.

동시에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 사이에서도 '진실'만으로는 소통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장 깊게 교류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에서 소통의 근간이 되는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서로 가까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서로 가장 솔직한 대목에서 서로 갈라진다.

그 장면은 바로 안나와 댄이 각자 래리와 앨리스에게 자신들의 관계를 '솔직히' 밝히는 부분이다.

거기서는 주인공들이 잔인한 진실과 맞서면서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고 그 안의 관계들이 파탄난다.

진실이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사람들을 서로 더욱 멀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진실이 드러나는 부분은 앨리스가 래리에게 스트립쇼를 해주는 장면이다.

앨리는 자신의 실명을 밝히며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래리는 이를 믿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클로저"를 영화로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었다.

앨리스가 거짓을 이야기할 때는 그녀를 사랑했던 댄이 있지만, 그녀가 정작 진실을 말할 때는 그녀를 믿어주지 않는다.

앨리스는 댄과 가까워진 것인가? 거짓을 바탕으로?

그리고 진실은 그녀를 래리와 가까워지게 만드는가? 그녀가 하는 진실된 말은 래리를 의심하게 만들 뿐, 둘을 가깝게 만들지는 않는다.

주인공들은 진실을 갈구하지만, 그 진실은 서로를 가깝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이것이 주인공들이 상징하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주인공들의 모습은 매우 단편적이고, 때로는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나 감정적으로는 이입이 되며 작품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것은 바로 이 작품이 인간 간의 교류와 소통의 부재를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체, 사랑, 진실을 통해 상대방과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closer, 더욱 가까운,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현대인들의 슬픈 자화상.

그게 "closer"라는 작품에 대한 나의 감상이다.


-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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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나가 후미, "사랑해야하는 딸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서양골동양과자점"이라는 만화를 건네주며 "진짜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가 잔뜩 나와"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히기를, "동성애물 싫어하면 거부반응보일 수도 있는데 이건 그렇게 심하지 않으니까 한번 봐봐"라 했다.

요시나가 후미라는 작가와 나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고, 작품도 탄탄하다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 작가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대학 들어와서 한참이 지난 후에 이 작가가 BL 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원래 좋아하는 작가나 감독의 작품은 모조리 다 보는 걸 선호하지만
개인적으로 팬픽이나 야오이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약간 망설여졌다.
그러나 몇년에 걸쳐 나는 결국 그녀의 (거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게 되었다.
동성애, 특히 남성 간의 사랑을 많이 다루었지만, 내가 싫어하는 류의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류는 그러니까 뭐..동성애라는 허울 아래 결국 3류 이성애 로맨스를 답습하는 그런 거...)
그래서 다시 한번 작가에 감탄하게 되었다.

요시나가 후미가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부분은 섬세한 심리묘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소소한 일상을 꿰뚫어 보고 그에 내재된 의미를 발견하여 적절히 그려낸다는 점이다.
특이한 상황을 특이하지 않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주면서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적인 일들을 유의미한 것으로 격상시킨다.
(그점에서 보면 카프카와 닮은 것 같기도;;;)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외부로 확장되지 않는다. 
새로운 인물들이 마구잡이로 등장하여 스토리가 산으로 가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매우 탄탄하다.

자, 그럼 "사랑해야 하는 딸들"이라는 작품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볼까?
내가 이 책을 집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이다.
작년에 홍대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이 놈아가 지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한양문고에 들어갔다.
만화책들을 하나씩 찬찬히 훑어보는데 순간 FUMI YOSHINAGA라는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단행본임을 확인하고 바고 결제.
그리고는 8번 출구 앞에 있는 농협 근처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친구가 오고 나서도 난 책을 가방 속에 넣기 힘들었다. 빨리 다 읽고 싶었기 때문에...
일년이 지난 지금도 간간히 다시 손에 쥐게 되는 만화다. 할일 없는 날...숙취에 시달리는 날...

책 뒤에 있는 설명을 그대로 옮겨본다면,
"딸과 어머니, 딸과 할머니, 어머니와 할머니
남녀의 사랑, 육친의 사랑, 친구의 사랑
서로를 향한 사랑, 한쪽을 향한 사랑, 모두를 향한 사랑

여자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존재의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잔잔하지만 깊게, 그리고 선명하게 그려낸다.
"

이 만화는 다섯가지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이 다섯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유키코.
첫번째 에피소드는 유키코와 엄마 마리의 이야기이다.
유키코의 아버지는 유키코가 12살 때 돌아가시고 그 이후로는 모녀 단 둘이 산다.
뭐, 그런 경우에 언제나 그렇듯히 모녀가 아웅다웅 다투는 장면으로 만화는 시작한다.
한데, 여기서부터 인상적인 대사 나온다:

(고등학생인) 유키코: 왜 그래요?! 대체 엄마는 만날 왜 그러는 건데?! 이런 건 괜한 화풀이 아냐!!
마리: 뭐? 그래, 화풀이다. 그게 뭐가 잘못인데? 부모도 사람이야. 기분 나쁠 때도 있다고! 네 주위가 모두 너한테 공정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야!!


그런데 마리가 50살이 넘어 암에 걸린다. 물론 성공적으로 수술을 해서 살아남지만 그 후 그녀는 딸인 유키코보다 세살이나 어린 배우(지망생)과 재혼을 해버린다. "해 버렸어. 뭐 어떠니. 내 인생인데."라는 말로 딸에게 자신의 재혼 사실을 통보하는 마리.
오오하시(마리가 재혼한 남자)는 둘이 사는 집에 들어오고 셋이 같이 살게 되지만 유키코는 처음부터 이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마리를 정말로 사랑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겠다고 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어머니가 딸에게 냉정하게 자신의 주체성을 주장하는 부분이다.
'내가 네 엄마라 해도 나는 기분이 나쁠 때도 있고 네 칭얼거림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너한테 화풀이하고 싶을 때가 있어. 네가 내 딸이라는 거랑, 내가 하나의 인격체로서 느끼는 감정이랑은 서로 무관해. 내 기분이야. 내 감정이야. 내 인생이야. 너에 대한 의무감에 그런 걸 숨기거나 왜곡하고 싶지 않아'라는 식의 마리는 너무 멋지다.
잔인하도록 냉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부모를 '부모'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야하지 않을까?
난,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만큼이나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다양하게 다루어진다. 그러나 부모 역시 자식에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내 자식이니깐 '당연히' 희생을 감수해야한다는 논리는 이제 좀 집어치울 때가 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대한민국의 위대한 어머니'像을 혐오한다.) 이 만화에 나온 마리처럼 자식에게 매정하게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에피소드가 마음에 든다.

다음 에피소드는 마리의 남편 오오하시의 고등학교 동창 이즈미 키요타카의 경험담이다.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키요타카에게 어느날 수업을 듣는 여학생이 찾아온다.
자신은 괜찮다며 키요타카를 성적으로 '유혹'하는데 이에 응하지 않으면 되려 그를 성추행범으로 몰아가겠다는 협박에 키요타카는 넘어간다. 그러나 그 여학생은 결코 '끝'까지 가진 않는다.
그 여학생은 알고보니 엄청난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여자였다.
자신은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상대방에서 성적으로 '봉사'를 하면서도 그 쪽이 받아준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타입.
키요타카는 그래서 "...너 대체 어떤 끔찍한 애들하고 사귀었던 거냐?"라고 묻자 그녀는 "왜..왜요? 다들 굉장히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저 같은 여자 아파트에도 놀러와 주고 제가 해 주는 밥도 먹어 주고 제가 사 온 선물도 받아 주고..."라 답한다.
난 이 별거 아닌 것같은 대화에 꽂혔다.
왜?
내...가...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온갖 것을 다 퍼다주면서 상대방이 받기만 해도 황송하고 고맙다.
그 모습이 이 여학생과 오버랩되면서 마음을 울렸다.
한편으로는 '아-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안도감도 느껴졌다. 누군가가 토닥토닥거리는 기분. 위안. 

다음으로 인상이 깊었던 대목은 마지막에서 두번째 에피소드인데,
여기서는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딸로 등장했던 유키코의 중학교 동창들이 등장한다.
중학생때는 여성의 인권이나 미래의 꿈에 대해 조잘거렸지만,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각자의 길을 간 세명의 친구들은 살면서 지치고 중학생 때 품었던 원대한 꿈들을 하나씩 잃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날 유키코가 두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다.
"중학교 때 얘기했던 것처럼 집안 내의 남녀평등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일은 그만두지 않고 힘내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읽은 친구 중 한명은 "그대로 어떻게든 일은 그만두지 않고 힘내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그 시절 얘기했던 자그마한 꿈을 지켜내 주고 있는 친구가 이렇게 있었던 거다."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살아야할 것 같다.
살면서 어렸을 적 꿈꿨던 삶이나 미래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생활을 영위하지만, 그래도 '힘'을 내며 묵묵히 걸어가야하는 것이다. 그게 꿈을 지키는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쳐가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질 때에도 나의 꿈을 공유했던 누군가가 우리의 꿈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 또한 잃어버리는 안되는 것이다. 그 힘으로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은 다시 한 번 모녀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마리는 어머니로부터 칭찬 한 번 받은 적이 없어 엄청난 외모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심지어 "친부모라도 난 저 할망구가 죽는다 해도 절대로 안 울걸."이라 말한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마리를 너무나도 예뻐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마리가 건방져질까봐 역으로 그녀를 깎아내렸던 것이다.
"난 이 아이를 더 귀여워했다간 이 아이의 미래가 끝장이 날 거라고 생각했단다. 마리를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그런 재수 없는 아이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그래서 난 그 뒤로 마리에 대해선 절대로 얼굴을 칭찬하지 않기로 한 거야."
사실 웬만하면 이 쯤해서 마리와 마리의 어머니는 화해를 하고 어머니가 죽고 난 뒤 마리가 대성통곡을 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요시나가 후미는 그렇게 진부하지 않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 알게된 유키코(마리의 딸)은 이 사실을 오오하시에게 알려준다.
근데 그의 반응이 대박이다.
"그건 마리 씨도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완성되어 버린 그녀의 콤플렉스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알고 있는 거랑 용서하는 거랑 사랑하는 건 다른 거니까. 그리고 부모를 좋아하지 못했던 건 불행한 일이지만 결국 대단한 건 아니잖아."라 일침을 가한다.
맞는 것 같다.
인생은 화해로 끝난다는 보장이 없다. 화해에 대한 강박이나 의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다 알고 있어도 용서가 안되는 것이 있고, 부모라 해도, 자식이라 해도 '일반적인 정도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불행하리란 법도 없다.
삶이란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일뿐.

이런 묘사들이 좋다.
거대한 감정의 폭발 없이 소소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기법.

꼭 추천하고 싶다.
단행본이라서 짧은 시간 안에 다 읽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사랑해야한 딸들"이 "어머니라는 존재도 결국은 한 명의 불완전한 여자인 것"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이기에.

-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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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모놀로그 Vagina Monologue


버자이너 모놀로그/Vagina Monologue
원작 : 이브 앤슬러 Eve Ensler
연출 
: 이유리
기획 : 이지나 

출연 : 김여진/정애연(더블캐스팅), 정영주, 이지하
관람일자 : 2011년 12월 27일 화요일 16시
공연장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공연시간 : 110분



이브 앤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꼭 여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다 이 연극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무대에 오른지 어언 10주년을 맞이했다.
사실 대학교 1학년 꼬꼬마일때부터 보고싶었던 극인데,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논문스트레스로 인한 무뇌상태에서의 지름신 강림덕분.)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까나...
연출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불행하게도 이유리연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쩝; 죄송합니다....
기획은 이지나님께서 맡으셨는데, 내가 알기로는 "버자이너 모놀로그" 국내 초연 때 연출을 맡으셨던 분이다. 이후로도 꾸준히 이 연극 연출을 맡으셨는데 이제 바통을 넘긴 듯싶다.
(사실 이지나 연출을 좋아하는 편이다. 2005년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클로저" 국내 초연도 이지나 연출이었고, 연극에 대한 안목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도입할 수 있는 용기와 티켓파워가 갖춰진 분이라 생각한다.)
원작이 어떠한지, 그래서 이번 공연은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변형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그 공연자체에 대한 인상과 느낌을 말하고자 한다.

일단 무대에 대해 말해보자.
토크쇼를 보는 것 같다.
오른편에는 1인용 소파 하나, 왼편에는 2인용 소파 하나.
딱 토크쇼 호스트와 게스트를 위한 자리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뒤쪽의 커튼이었다.
뒤에는 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커튼으로 되어 있어, 때에 따라 커튼이 열리기도, 닫히기도 하면서, 커튼에 어떤 조명을 비추느냐에 따라 반사되는 빛때문에 분위기까지 확확 바뀌었다.
그리고 그 커튼 뒤에는 피아노 연주하시는 분까지 와계셨다.
그러니 녹음된 음향을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며, 배우들과 음악의 호흡이 찰떡궁합이기도 했다.
무대가 조잡한 것을 그닥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을 줘서 좋았다.

다음은 배우들.
내가 본 공연은 김여진, 이지하, 정영주 캐스팅이었다.
감히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할 수 있겠냐마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김여진님은 극 전체의 사회를 맡는 역할이었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진행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현재 임신 6개월차라고 하시는데, 연극 초반에 나와 이 연극을 하는 것이 태교에 과연 좋은 것인가를 고민하셨다며 무대에 선 배우 김여진과 인간 김여진을 넘나들며 연기를 하셨다.
토크쇼를 연상시키는 형식인만큼, 여배우 3명이 이야기를 할 때엔 그것이 짜여진 각본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냥 수다를 떠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단순히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이 아니라, 정말 '생활'권에 들어온 것 같았으니..
정영주님은 뮤지컬배우시라는데, 뮤지컬 쪽으로는 전혀 문외한이라...
극에서 톡톡 튀면서 시원시원하게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하는 역할을 맡으셨다.
그 포스와 아우라는 정말이지 무대 전체를 휘어잡을만했고, 특히나 신음소리를 교습시키는 대목에서는 엄청난 내공을 선보이셨다. 실제 성격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무대 위의 모습이 실제 성격과 직결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이지하님은 처음에는 굉장히 부끄럼을 많이 타는 역할이었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호감이 갔다.
연극배우 출신이셔서 그런지 발성이...!!!!
매우 여린 외모와는 달리 목소리의 울림이 매우 깊다.
정말 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울리게 만든다.
이건 단지 목소리가 좋다거나 소리의 크기가 큰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분이셨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우리말로 "보지의 독백".
지금 고백하건대, 부끄럽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난 "보지"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었다.
그러다 보지가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 단어가 비속어라고 생각을 했고, 욕인줄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극 초반에 김여진님께서 친절히 설명을 해주신다.
보지의 사전적 의미를.
그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보지'는 비속한 표현이 아니다.
단, 최근들어 음지에서 계속 사용되기 때문에 점차 비속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을 뿐이다.
이런 설명이 극의 초반부터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이 연극이 얼마나 '셀' 지를 예고한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리 그려놓은 보지에 옷을 입히는 것이다.
판넬에 그려진 보지가 있는데 (사진처럼 적나라한 것 말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쁘게, 왕관까지 쓴 모습이다.) 거기에 정영주님께서 직접 옷이나 장신구를 그려넣으신다.
이건 관객이 참여해야 하는데, 내가 봤던 공연에는 누가 피어싱을 주문해서 다이아몬드 피어싱을 해주었다. 스카프도 두르고. 다른 공연에서는 용문신을 주문한 적도 있다고 했다. 큭큭.
이렇게 '보지'라는 단어와 성기 자체에 대한 거리를 좁혀간 후에 본격적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극의 구성은 단순하다.
원작자인 이브 앤슬러가 수많은 여성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작품인 만큼,
다양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기본적으로는 토크쇼로 진행되다가 중간중간에 각 배우들이 독백체로 특정 상황에 놓인 여성을 연기한다. 그 폭은 젊은 미혼 여성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남자친구와 행복한 성생활을 즐기며 자신의 보지를 긍정하게 된 여성의 이야기부터
어렸을 적 아버지의 친구한테 성폭행을 당할뻔했던 아이의 성장기까지.
각 배우들은 맡은 각 역할들을 충실히 이행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이지하님의 눈물 연기.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하는 여성의 내면에 숨겨진 두려움을 나타내셨다.
처음에는 웃긴다. 자위나 오르가즘을 공공연하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저속하다 욕하며 내숭을 떠는 모습은 정말 가볍고 재미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자신이 불감증일까봐 두려워하며 눈물을 떨구는 모습은 진정 보는 이로 하여금 울컥하게 만든다. 그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난다. 그러나 이배우님께서는 너무나도 훌륭하신 분이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감정의 180도 변화를 매우 자연스럽게 연기하신다. 짝짝짝.

그렇다고 섹스나 보지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폭력 역시 중요한 점으로 언급된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 역시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문제는...나에게 너무..익숙한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새로울' 것들이 없다.
이렇듯 어찌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데 문제인데도 관객 입장에서는 계속 보게된다.
그 이유는 아마 '표현'이 잘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몰입이 된다.
그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 정말 개인적으로는 위안부문제를 언급할 때 지나치게 비장미를 뽐내려하는 모습이 다소 불편했지만, 소재의 무게가 있는 만큼 그냥 넘길 수 있을 정도라고 해두자.)

전반적으로 한 번쯤은 꼭 봐야할 연극이라 말하고 싶다.
특히 이성애자 연인들에게 강추한다.
같이 보러 가기에 거시기한가?
그래도 강추한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가서 본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남성들이 제 2의 성인 여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왜...남자들 자위하는 건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 가볍게 다뤄지는 반면 여성의 자위는 그렇지 않은지, 여성의 성기라는 것이 단순히 섹스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함의가 있을 수 있는지를 한 번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난 공연을 보는 내내 즐거웠다.
(특히 배우들의 입을 통해 보지가 말하는 것을 전해들었을 때.)

하여간, 1월 29일까지 상연되니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꼭 보러가시길!!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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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Aida, "건슬링거 걸 Gunslinger Girl"


에...만화를 올리는 건 또 처음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보니 너무 좋아서.
아니, 좋다기보단 사실 마음이 아려서....

이 만화의 내용을...뭐라 설명해야 할까.
배경은 일단 이탈리아.
정부에서 비밀기관?조직?을 만든다. 테러범들을 살해하기 위해. (외견상으로는 복지공사같은 거...)
그리고는 범죄에 희생을 당하거나 선천적으로 몸이 안좋은 아이들,
그러니까 신체적으로 불구가 된 아이들, 가족에게 버림을 받거나 가족이 없어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여자아이들을 데려와 인공근육과 살을 붙혀 '의체'로 만든다. 각 의체는 한 명의 담당관에게 배치된다.
이 담당관과 의체의 관계는 프라텔로(Fratello), 즉 형제인데,
사실 담당관이 의체를 어떻게 다루는가는 비교적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약물을 통해 심각한 '조건강화'(=세뇌)를 시킬 수도 있고, 최소한의 '조건강화'를 하여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줄 수도 있다.
결국 어떤 담당관이 걸리느냐에 따라 복불복이란 말씀.
의체가 된 아이들은 약물을 복용하고 인공적으로 몸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실 각각 하나의 실험대상이라고도 볼 수 있고, 정말 무조건적으로 담당관을 보호하고 그들의 명령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사이보그같은 느낌도 있다.
그러나...일단 그래도 이들은 인간이다.
아무리 몸과 마음을 '재부팅'시켜도 이들은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느끼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플 때도 많다.

지금 현재 6권까지 밖에 못 봤지만, 현재까지 등장한 프라텔로는
(담당관-의체 순)
죠제-헨리에타
장-리코
히르샤-트리엘라
라바로(사망)-클라에스
마르코-안젤리카
알렉산드로-페트르슈카
이다.

일단 등장인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하자면:
죠제는 전직 군인이며 헨리에타를 다정하게 대하는 편. 선물도 자주 주고, 잘 챙겨주면서 자상한 편이다. 동생인 엔리카를 잊지 못하며 헨리에타를 보며 엔리카를 떠올리고, 실제로 헨리에타를 거의 여동생처럼 대하기도 한다.
헨리에타는 가족 전체가 살해당하고 가족들의 시체 옆에서 폭행을 당하다 구조되었는데, 죠제를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소녀. 죠제에게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며 혹여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가 될까 두려워 한다.
은 죠제의 형이자 개인적으로 다소 냉혹한 면이 있다. 담당관들의 리더로 현장지휘를 맡고 있으며 리코에 대해 가차없다. 그러나 그 역시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되어 그리 된 듯...(아직 자세한 내막은 나오지 않았지만, 약혼녀였던 소피아의 죽음이나 엔리카의 죽음이 무관하진 않을 것이라 추측.)
리코는 전신마비 환자였는데, 공사에 들어가 11세 생일 때 처음으로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게된다. 장이 담당관이라는 점에서 불쌍할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아이가 가장 불쌍한 것은..."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가장 맘에 걸리는 게 있다. 그건 오늘도 내 몸이 제대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 다행이다. 움직여. 자유로운 몸, 정말 멋진 일이야. 사회복지공사, 난 여기서의 생활이 참 맘에 든다."라는 구절에서 보이는, 매일 아침마다 이 아이가 눈물을 떨구며 깨어나는 모습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빼면...어찌보면 가장 천진난만한 아이일지도...?
히르샤는 독일 출신으로 유로폴에서 일을 하다가 처음으로 현장에 나간 것이 스너프 필름 촬영을 한 곳. 그곳에 성폭행을 비롯한 온갖 고문을 당하고 버려진 아이를 구하는데 그게 트리엘라다. 트리엘라와의 서먹한 관계 때문에 항상 고민하지만, 매년 크리스마스에 곰인형을 사주고, 때로는 따듯하게 안아주기도 하는, 자상한 남자.(ㅋ)
트리엘라는 의체들의 '맏언니'격 존재랄까?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현장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가까워지려는 히르샤를 주로 내치는 편인데, 그들의 관계는 참....으로..... 미묘하달까? 개인적으로 공사에 오게 된 배경이 가장 가슴 아팠던 아이.
클라에스의 담당관이었던 라바로 역시 전직 군인이었고, 둘의 관계는 거의 부녀 관계에 가까웠지만, 그가 사고로 인하여 죽는다. 클라에스는 그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기억 상실은 의체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약물 부작용이다) 장의 케어로 인하여 공사 내에서 이것저것하며 살고 있다. 식물을 심어 키우고, 피아노를 치며, 영화도 보고, 책을 많이 읽는다. 그래서 의체들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많이 물어보고, 실제로 박학다식하다. 그러나 담당관이 죽었기 때문에 현장에 투입되기 보다는 의체 개발 실험체가 되어버렸다는....
마르코안젤리카에 관한 이야기도 참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데....안젤리카는 의체 개발 초기단계에 의체가 된 아이인데, 의체화의 부작용으로 약물에 대한 의존도가 크고, 그래서 불안정하다. 기억상실도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그래서 그 아이에게 온갖 정성을 쏟고 정을 주었던 마르코가 더욱 힘들어하는데, 현재로서 마르코는 갈수록 쇠약해져 가는 안젤리카를 보며 무력감을 느끼고 의도적으로 냉정하게 대한다. 참, 안젤리카의 비하인드스토리도 참...안젤리카의 부모가 딸 앞으로 들어놓은 거액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이를 심부름 보내놓고는 일부러 차로 치어 죽이려 했던 것....

으...생각보다 인물 설명이 길어졌군.
여튼!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꼽아보자면...

1. 프라텔로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수사관이 죠제와 헨리에타를 방문한다.
헨리에타는 엘자(죽은 의체)가 왜 죽었는지를 알겠다며 수사관과 죠제를 한자리에 모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엘자는 라울로[담당관] 씨의 충실한 의체였던 거죠?
- 응...감정은 희박하지만 라울로를 흠모했던 모양이다.
- 죠제 씨...라울로 씨는 엘자에게 상냥했나요?
- 아니, 일 이외에는 제대로 상대해주질 않았지.
- 그럼...진상은 아마 이럴 거에요. 만약 누군가를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데 그래도 그 사랑이 영원히 보상받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 저라면...상대를 죽이고 그 다음 이렇게 하겠어요.[라며 총구를 자신에게 겨눈다.]

2. 히르샤와 트리엘라의 대화 도중, 트리엘라 독백.
히르샤: 나폴리까지 온 거니까 쇼핑이라도 할까?
트리엘라: 네?
히르샤: 생각해보면 네게는 딱딱한 옷밖에 준 기억이 없어서. 예를 들면 귀여운 옷이나 신발을...
- 바로 난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트리엘라: 전...넥타이를 맬 때의 꽉 조이는 느낌이 좋은 데다, 구두가 바닥을 치는 듯한 울림도 맘에 들어요.
- 그 말을 들은 그는 좀 쓸쓸한 듯이 미소 지었다.

3. 피노키오(거의 살인병기 수준의 소년.)와의 첫 대결에서 패한 트리엘라를 위로하는 히르샤에게 트리엘라가 하는말:
전 의체에요! 그런데 맨손의 인간에게 당하다니!! 원한다면 경찰을 가장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생명을 깎는 리스크를 짊어지고 있는 의미가 전혀 없잖아요. 건드리지 마세요. 지금은 혼자 있게 놔두세요.

4. 의체 담당 의사에게 헨리에타가 하는 말:
하지만...비앙키 선생님. 전 아직도 뭔가 부족하단 느낌이 들어요. ... 지금보다 더 소중히 대해줬으면 해서...선생님...이런 말을 하면 죠제 씨가 절 미워할까요? 생각해보면 전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소중히 보살핌 받고 있는 거니, 제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거겠죠?

5. 피노키오와 두번째로 붙은 트리엘라. 정말 난 그 아이가 죽는 줄 알았는데, 심하게 다치고 이겼다 ㅡㅡ; 눈을 뜨자마자 맨발로 히르샤를 찾아간 그녀.
- 히르샤 씨. 저...이겼어요.
- 아직 움직여서 안돼! 어서 차로 돌아가!
- 괜찮아요...아직 약기운이 있어서...제 얘길 들어주세요! 저, 이겼다고요! 피노키오를 제 손으로 죽였어요! 이건 모두 훈련 덕분이죠. ...... 히르샤 씨? 칭찬 안 해주는 거예요? 명령대로...적을 물리쳤는데...
이 때, 히르샤는 트리엘라는 와락 안는다. 어흑.ㅡㅜ

뭐, 이 외에도 간간히 아이러니컬한 부분이라든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은 더 있었지만, 이정도로만 하고.
내일 남은 7~12권을 빌리기로 했는데 두근두근.

- 미니^-^☆

P.S.: 이거, 은근 디게 유명한 거였잖어? 으으...이걸 내게 추천하면서 흔쾌히 빌려주신 그 분이 사실은 날 점차 오덕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번쩍! 잠이 깬다...내일 두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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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 유쾌한 서브텍스트 읽기


써니 2011年作

감독 : 강형철
출연 : 유호정 (나미 역), 심은경 (어린 나미 역), 진희경 (춘화 역), 강소라 (어린 춘화 역), 고수희 (장미 역), 김민영 (어린 장미 역), 홍진희 (진희 역), 박진주 (어린 진희 역), 이연경 (금옥 역), 남보라 (어린 금옥 역), 김보미 (어린 복희 역), 민효린 (어린 수지 역),
줄거리: 나미는 고등학생 딸을 둔 주부다. 나미는 병원에 입원한 친정엄마를 방문하던 중,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춘화를 만난다. 춘화는 암환자로, 이미 죽을 날이 머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 함께 다니던 옛 친구들 "써니"를 다시 보고 싶어한다. "써니"에는 싸움짱이자 리더인 춘화를 비롯하여 외모, 특히나 상꺼풀에 목숨을 건 장미, 맛깔스러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교수집 딸 진희, 꼭지가 돌면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문학소녀 금욕,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미장원집 딸 복희, 빛나는 외모의 소유자이자 얼음공주인 수지, 그리고 전라도 벌교에서 전학을 온 나미, 이렇게 일곱명의 멤버가 있었다. 춘화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멤버들을 찾아나서는 나미는 옛 추억들을 회상하게 되는데....

※ 이하 영화를 보신 분들만 보세요.
줄거리까지는 영화 보실 분들에게 미리 정보를 드리는 차원에서 썼지만, 여기부터는 스포일 아닌 스포일이 있을뿐더러,
영화 안보시면 이해가 안될 수도 있어요^-^☆
(워낙 주절거려서;;)



우연히 주말에 해주는 영화프로그램에서 이런 영화가 개봉한다는 사실을 접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유호정님께서 나오신다기에 궁금해졌고, 때마침 시간이 맞아떨어져 엄마와 함께 볼 수 있었다.

일단, 8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정말 공감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엄마는 불행히도(?) 각각 2000년대 초반과 7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사복을 입고 학교를 간다는 것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입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두시간 가량 신나게 웃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는 정말 잘 만든 오락영화이다.
이 영화의 유머코드는 사실 굉장히 진부한 것들로 구성되어있다. 누가봐도 이건 웃음을 노리고 했구나-싶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사실 누가 작정하고 의도적으로 웃기려할 때 실제로 웃음이 나오기는 힘이 들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개콘에 나오는 분들, 정말 대단하다는.)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이 영화가 영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웃긴다. 웃으라고 만든 부분에서 정말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래서 기발하다. 진부한 유머로 관객을 웃기기. 잘 짜인 것 같았다.
울라고 만든 장면에서는 나만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감정 기복이 좀 많이 심하고 감정 표출이 잘 되어서...) 혹자는 울라고 집어넣은 장면들을 보면서 짜증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그래서 일단은 넘어가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이 영화가 하나의 서브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불안한 사회 등등 당시에 우리 사회는 급변하고 있었다(고 나는 배웠는데..). 사람들이 무지하게 죽었고, (대)학생들의 운동이 무섭게 이루어질 때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런 내용들이 가볍게, 부차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전경들과 학생들이 부딪치는 장면은 음악과 함께 "써니"와 "소녀시대" 패거리들이 맞짱을 뜨는 장면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그 순간, 당시의 암울했던 사회적 분위기, 수많은 희생자들과 폭력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존넨알레"를 보는 것 같았다. "존넨알레"는 동독의 청소년들에 대한 영화이다. 원작자인 브루시히가 몇년전 한국에 와서 강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인상적이었던, 그래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자신은 동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묘사를 하고 싶었단다. "타인의 삶"에서와 같은 암울한 동독에 살고 있지만, 청소년들의 밝은 모습, 다른 서구권 국가에 사는 청소년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그런 모습들을 담고 싶어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즉, 자신은 허구라고 생각되는 이미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실제로 동독에 살았던, 당시에 청소년기를 겪었던 사람들은 "존넨알레"를 읽으면서/보면서 (이 작품은 책으로 먼저 나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그래! 바로 이랬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만든 사람은 "이건 가짜야."라는 심정이었는데 보는 사람은 "이거야, 이게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야!"라고 했다는 점이?
"써니"를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교과서에 배우는 80년대가 아닌, 분명 저런 부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최루탄 날리고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찡하는 거대한 역사적 사명과 거시담론과는 전혀 다른 미시적인 세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영역 다툼을 하고, 미래 자신의 모습을 꿈꾸기도 하고, 첫사랑 오빠를 보며 설레이는 여고생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사소한 것에 목을 매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평범한 학생의 모습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역사적 담론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 싶기도 하다. 마치 그 시대를 살았으면 당연히 집회를 하고 운동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2000년대에 학교를 다닌 나와 70년대 학교를 다녔던 우리 어머니 세대와 똑같은 고민들과 생각들을 하는, 눈에 띠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난 좋았다.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14명의 여배우들이 하나하나 머리에 각인된다는 것이다. 아니, 조연급 배우들까지 합치면 거의 20명에 달하는 여배우들이 기억난다. 솔직히 말해, 어느 정도의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는 미니는 영화 초반에 불안감에 두근두근거렸지만, 그런 불안감은 기우였다. 각 인물들의 개성이 지나침없이 뚜렷하여 구분을 짓는 데에 아무런 무리도 없었으며, 하나같이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여기서 살짝 덧붙히자면, 난 이 영화를 보고 어린 춘화 역할을 맡은 강소라씨에게 완전 반해버렸다.]

마지막으로, 나미가 어린 나미와 함께 벤치에 앉아있는 장면과 관련하여 떠오른 노래 두곡만 추천하고 이 허접한 글을 마칠까한다: 
Pink - Conversations with my 13 year old self, 김윤아 - Girl Talk.
두 곡 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내용인데,
누구나 해봤음직한 일 아닌가?
어린 자신을 토닥이는 상상. "괜찮아. 나아질 꺼야."라고 어른인 내가 아이인 나에게 말하는 것.

어쨌든, 난, 이 영화 강추하네. A-

-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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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즐거운 나의 집(드라마 감상)

한국 드라마를 안 본 지 꽤 된 것 같다.
아니다. 주말에 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보는구나.
그거야 일단 김수현 작가님 작품이니까 '당연히'보는 거고,
하여간에, 뭐 하나 제대로 본 게 없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한국 드라마 만큼은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작품을 볼만한지 아닌지가 갈리는 것 같다.
대체로 작가의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에 같은 작가의 작품들은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까.
근데 이번에, 꽤나 괜찮은 보석을 발견한 것 같다.
다름아닌 "즐거운 나의 집"
사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줄 알고 관심을 가졌는데, 제목만 같을 뿐,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십년 넘게 내 마음 속 여신님 김혜수님게서 출연하시기 때문에...보게되었다..ㅋ
알고보니 작가는 유현미. "그린로즈"와 "신의 저울"을 집필하신 분인데, 전작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썩 괜찮은 작품들이었다는 평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어느정도의 기대감을 갖고 보기 시작했다.

김혜수라는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은 있었지만, '미친' 연기력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불행하게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극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관객/시청자의 감정 이입을 막을 정도로 연기를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안정적인 연기라고 할까. 소름이 끼칠 정도의 연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타짜"에서는 정말 절묘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어 설득력이 1000%였지만,
그건 그녀의 외모와 목소리, 다분히 외형적인 성격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만한 외형적인 조건을 가져도 그 역할을 잘 살리지 못할 배우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안타까웠던 점은 작품 선택과 관련한 부분이다.
그녀가 찍은 작품들(특히 영화!!)을 보면, 그 작품들이 시나리오상으로 읽어보았을 때는 정말 괜찮은 것들이지만, 그 결과물은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없지 않다는, 아니 매우 실망스럽다는 평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배우로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작품복이 없달까. 매우 안타깝지 그지없었다.

그래서 "즐거운 나의 집"이 첫방영되었을 때, 약간의 기대감과 불안감이라는 양가적인 느낌을 갖고 고민을 했다.
그리고 봤다.

아, 보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일단 배우 김혜수의 연기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서 차 옆에서 절규하는 장면이나,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나온 것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하는 모습이나, 정말 흡입력있었다. 이건 단지 작가가 잘 써서, 카메라 감독이 잘 찍어서, 혹은 연출이 잘해서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그림이었다.
몇번이나 돌려보아도, 눈빛서부터 목에 서는 핏줄까지 섬세하게 진서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대장금에서 이영애가 한방울씩 떨구던 눈물.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새하얀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 방울들-)
물론, "즐거운 나의 집"은 김혜수의 원맨쇼가 절대 아니다. 외모-연기력 반비례 법칙이 어긋난다는 살아있는 증거 황신혜, 조연이라도 주연 못잖은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윤여정님, 이 세 명의 여배우들이 이루는 심리전이야말로 "즐거운 나의 집"의 관전포인트라 할 수 있다. (황신혜의 얼굴이 왜 얼룩덜룩해보이는지 모르겠지만...내 집중력을 좀 흐트린다.)
정말 짜증나는 점은 진서의 남편으로 나오는 신성우. 신성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의 어색한 연기에 전혀 적응되지 않는다. 진서와 윤희 사이에서 우유부단하게 갈팡질팡하는 상현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최소한 머리로 이해를 할 수 있으려면 섬세한 내면연기가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신성우는 화날 때 그냥 소리지르고, 기쁠 때 그냥 웃고, 유혹당할 때 그냥 유혹 당하고...그 모습들이 너무나 인위적이어서...정말이지...휴우=3
김혜수나 황신혜와의 씬에서는 심지어 불쌍해 보일 정도로 연기를 못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고, 내가 출연하는 배우들을 좋아한다고 드라마를 보는 건 (당연히) 아니다.
김혜수를 정말 좋아하지만 "스타일"을 보진 않았고,
고현정을 좋아하지만 "선덕여왕"을 다 보진 않았다.
주연 배우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은 보았고, "아일랜드"도 한숨에 다 봤다.
즉, 내가 "즐거운 나의 집"을 호평하는 이유는 단지 배우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지난 몇년간 사회적 코드인 (이젠 정말 신물날 정도로 식상한) "불륜"과 추리, 미스터리, 에로틱을 다 갖추었다. 매우 식상한 소재들이지만, 현재의 스토리라인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회상신으로 한겹한겹씩 새로운 층위를 깔아가고 있다. 진서가 윤희라면 치를 떠는 이유, 윤희와 은숙의 관계 등이 하나씩 껍질을 벗는 순간, 은필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조금씩 깊어지면서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가 눈에 띄인다.
6년 전 외도를 했던 남편을 두고, 그 남편에 눈독을 들이는 한 때 절친 윤희와 신경전을 펼치는 진서.
진서에 대한 컴플렉스를 안고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진 듯 하지만 상현을 갈망하는 윤희.
진서에게 충실하고 싶지만, 가정을 깨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때문에 윤희를 끊지 못하는 상현.
은필의 전처와 관련된 비밀을 안고 은필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려는 은숙.

정말 흥미로운 점은, 어느 누구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봐도 그 인물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행동과 언사가 이해된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돕고, 겉으로 보기에는 애처가인 듯, 정의의 수호자인 듯 보이는 남편 상현의 과거 외도와 윤희와의 관계가 잊혀지지도 않고 계속 신경 쓰이는 진서. 상현이 아무리 잘해도 그런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는 걸 왜 그는 알아주지 않는걸까.
술에 쩔어 호텔에 끌고가 유혹을 했건만, 모든 남자한테 통하는 가장 원초적인 유혹도 처음에는 통하는 듯 하더니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내쳐진 윤희. 왜 넘어올듯 말듯 이 남자는 나에게 오지 않는 걸까.
내 아내이지만, 한낱 시간강사인 자신에게는 과분한 아내 진서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현. 왜 이 여자는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일까. 나에 대한 존중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자존심만을 지키려는 그녀가 도저히 곱게 보이지 않는다.

걱정되는 것은, 회상신으로 인하여 점점 깊이를 더하는 이 스토리가 질질 늘어지지는 않을까-라는 부분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잘나가다가 어떤 부분이 지나치게 늘어지면서 다른 부분들이 긴박하게 전개되는 드라마들이 있었다.
"즐거운 나의 집"은 그 전례를 따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진서가 독기를 품고 악녀로 변하는 과정에서 늘어진다거나, 윤희가 상현을 유혹하려는 '선정적' 장면들의 무한 반복은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다.)
이 드라마가 1, 2회 만큼의 밀도를 끝까지 유지하고 신성우의 연기가 나아진다면, 소장하고 싶은 드라마 목록에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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